[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 1년을 맞는다. 하지만 ‘과잉 처벌’에 ‘위헌’ 논란까지 이어지다보니 재계 전반에서는 ‘미완(未完)의 법’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한 실정이다.
이 법의 입법 취지는 단순 명료하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진을 엄벌에 처해 경각심을 일깨우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인지 명확치 않아 실제 사고 예방이나 대처가 어렵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안전보건 관련 예산을 얼마나 편성해야 하는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해야 할 내부 지침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법이 사고 예방보다는 ‘최고경영자(CEO)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가천대 산학협력단은 최근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이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게 규정된 반면, 고용노동부가 낸 ‘해설서’가 법률명, 관련 조문을 개괄적으로만 예시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불성실한 태도”라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해설서만을 통해 구체적 의무를 식별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호된 비판을 내놨다.
위헌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법률에서 범죄의 구성요건은 ‘처벌 대상인 행위가 어떤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벌의 종류는 물론, 그 상한과 폭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그러나 법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판사들조차 법 내용 자체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법적 책임을 가리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와 지적을 내놓고 있다. 1ㆍ2심의 판단이 엇갈리면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구체적인 법 해석 기준이 제시돼야 하는데, 아직 1심 판례조차 단 한 건도 없는 상황에서 최소 3∼4년 뒤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헌재에서 위헌성 여부에 대한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일선 법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심리가 ‘올 스톱’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가 줄지 않으면서 ‘무용론’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지난해 발생한 사망사고는 230건으로 2021년(234건)보다 4건(1.7%) 줄어드는 데 그친 반면, 사망자는 248명에서 256명으로 오히려 8명(3.2%) 늘었다. 입법 취지와는 달리 유의미한 사고 예방 효과는 거두지 못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일단 법을 만든 뒤 뒷일은 나중에 수습하자’는 식으로 무책임한 입법을 내놓은 국회의 잘못이 가장 크다. 구체적인 소송이 제기됐을 때에만 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구체적 규범통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여건상 잘못된 입법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는 구제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처벌 중심인 중대재해처벌법을 안전사고 예방 조치와 그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도록 부디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길 바란다. 특히 강한 형벌만 규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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