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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권, 화조도(국화와 원앙), 34cm, 2023. |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둥그런 세상. 국화 향기가 만발한 화폭 안에 한 쌍의 원앙이 포착됐다. 아직은 서로가 데면데면해 보이지만 은근히 마음에 드는 눈치다. 수컷은 몸단장에 여념 없고 이를 흘깃 흘겨보는 암컷의 눈매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원앙은 수컷 원(鴛)과 암컷 앙(鴦)을 함께 가리키는 명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친숙한 텃새로 자리 잡았으며 주로 산간계류의 고목에서 서식한다. 겨울나기를 위한 이동 시기에는 활동의 반경이 크게 넓어지며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원앙은 예로부터 부부간의 금실을 대표적으로 상징해왔다.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염원하는 상징성을 아름다운 깃털만큼이나 가득 지니게 되며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는 특히 수컷의 화려한 외모 때문이기도 하다. 댕기는 다양한 색깔로 늘어져 있고 눈에는 뽀얗고 흰 깃을 격조 있게 둘렀다. 주홍빛의 수염과 톡 불거진 은행잎 같은 날개의 움직임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다.
이 그림에서는 실제 수컷 원앙처럼 화려한 모습보다는 다소 어수룩하게 표현하여 정감을 더해보고자 했다. 번식기를 마친 수컷은 이전의 화려했던 깃들은 떨구고 암컷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며 암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변화된다.
원과 앙이 만나 비로소 원앙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차츰 이해하고 동화되며 닮아가는 모습을 볼 때, 백년해로는 수긍과 양보, 배려와 용서와 같은 화합과 순응의 전제조건이 수반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참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원앙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의미는 비단 부부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오랜 벗, 그리고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앙처럼 서로 순화하며 함께할 때 즐겁게 생활할 수 있고 그래야 다른 것들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찬 서리에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국화는 그 생명력으로 장수를 상징해왔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국화를 먹으면 신선처럼 오래 살 수 있고, 어려운 일도 곧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국화는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강인한 바위와 어우러지며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그곳에 사랑의 파수꾼인 새가 함께하며 영원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곧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의 문턱을 지나 봄이 열리고 정월 대보름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 쌍의 원앙이 던져준 물 위의 잔잔한 파장이 우리 모두에게 설렘과 사랑으로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돛의 뒷바람이 되어주길 기원해 본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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