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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붉은 꽃잎처럼 뜨겁게… 봄날 따뜻한 희망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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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2-02 08:09:06   폰트크기 변경      
[엄재권의 민화이야기] ‘모란도’

엄재권, 모란도, 20×38cm, 2020.


정초부터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고 있다. 가볍게 내뱉은 입김마저 금방 성에로 변하고 마는 요즘이지만, 어느덧 성큼 다가온 입춘(立春)이 정월 대보름과 손을 잡고 함께 다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곧 다가오는 봄날에 복 많이 받고, 경사스러운 일 가득 하라.’는 의미다. 절기의 시작인 입춘을 맞이하며 대문을 비롯해 집안 곳곳에 붙이는 축문 중 하나다. 여기에 기운 하나를 더 보태보고자 화중왕(花中王) 모란 그림 한 점을 꺼내어보았다.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를 머금은 듯 붉은 모란꽃과 둥근 달 같은 흰 모란꽃이 불로불사, 굳건한 바위를 의지하고 꼿꼿한 자세로 탐스럽게 피어났다.

모란의 상징성은 직관적이다. 그저 그 생김새처럼 넉넉함과 풍요에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부귀영화, 행복, 환희 등 사람의 염원을 담은 솔직한 바람들이 터질 듯한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발현되어 해석된 것이다. 이러한 특색으로 모란은 오래도록 인간의 이입된 감정을 은근히 발산하며 완상과 예술적 대상으로 우리 곁에 함께해 왔다.

관련된 설화로는 신라 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이야기가 유명하다. 당나라에서 선물 받은 모란 그림과 그 씨앗을 보고 공주는 그림 속에 나비가 없기에 꽃에도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모란의 향은 그 위용에 비교해 아주 미미한 편이다. 선덕은 예지력으로 이를 그림에서 찾아내었던 것이다.

또한, 모란은 군집을 이뤄 서식하는 특성으로 인해 선인들은 이를 보며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떠올리기도 했다. 모란을 소재로 한 회화나 특히 민화 속에서는 종종 나비들도 함께 등장함을 볼 수 있는데, 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꽃과 나비의 의인화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봄을 앞둔 엄동설한에 모란을 보니 성급한 비약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의 지혜 하나가 떠오르기도 한다. 무리 전체가 한데 모여 주기적으로 바깥쪽과 안쪽으로 서로의 위치를 바꿔 돌며 체온을 유지해가며 추위를 극복해가는 일명 허들링(Huddl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여러겹의 꽃잎을 겹쳐가며 마침내 한 송이의 모란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이 얼마나 따뜻한 결실인지 떠올려보게 한다.


곧 다가올 봄날에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이러한 모란이 피었으면 좋겠다. 더 그윽한 향기로 피어나 우리를 위로해 줄 그런 모란이 함께할 것임을 그림은 재촉하는 듯하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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