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공평이 핵심인 공공기관 직원들이 청탁ㆍ로비에 넘어가 특정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고 금품을 받는 경우, 여론은 이들을 ‘고양이’라고 비난한다. 그동안 토목ㆍ건축 건설사업의 설계심의 과정에서 적지않은 고양이들이 출몰했기에,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고육책은 직원 전문가들을 심의에서 빼고 대학교수를 비롯한 외부위원들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육책은 훨씬 더 심각한 폐단을 관행화했다는 게 작금의 평가인 것같다. 공식 통계는 있을 수 없지만, 설계시장에서는 ‘거래의 관행’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설계회사 영업의 90%가 외부 심의의원 관리라느니, 설계용역 총액의 5%가 심의위원 영업비용으로 쓰인다느니, 의욕 있는 설계기업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10%를 써야 한다느니, 심사위원 1인당 총액 3∼5%의 금품이 설계공모 당선 대가로 지급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냥 풍문이라고 흘려듣기에는, 시장 당사자들의 경험담과 목격담이 차고넘친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술경쟁력과 품질을 고양하겠다는 설계심의 입찰의 애초 취지가 무색하다. 사실 ‘무색하다’기보다는 ‘실종됐다’고 표현하는 게 더 합당할 것같다.
그런데 이달 초 눈에 띄는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이종욱 조달청장이 “적극 행정을 펼치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직무유기”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청장은 “사업 이해도가 가장 높은 조달청 내부 전문가들을 심의에서 배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직무유기”라며 내부 전문가들을 다시 심의위원 명단에 포함시켰다. 조달청에 이어 LH도 올해 설계심의위원단에 다시 내부위원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건축ㆍ엔지니어링 산업을 근심하는 업계 인사들은 쌍수를 들어 반기는 분위기다. 막대한 영업비용과 영업력을 낭비하지 않고 산업 생태계에 상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심사위원단에 극소수의 내부위원이 포함된들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큰 점수를 몰아주는 일부 외부위원의 불공정을 막기 어렵다.
설계시장에서는 훨씬 더 대담한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만난 건축ㆍ엔지니어링 산업 CEO들은, 외부위원들에게는 자문 역할만 맡기고 내부 공무원들이 결정적인 권한과 책임을 도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발주자 책임’이 대원칙이 되어야 하며,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면피성 공정’이라는 주장이다. 내부 전문가들은 감시하기도 훨씬 수월할 뿐더러, 부정이 적발되면 일벌백계하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지적이다.
외부 전문가는 믿을 수 없고 내부 전문가는 믿음직하다는 단순 논리에는 당연히 설득력이 없다. 주요 공공기관과 전국 지자체에서 수시로 발각되는 내부비리 사건들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대안이라고 내세웠던 방법의 폐해가 자못 심각하다면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맞다. 생선을 지킬 책임은 원래 집주인에게 있는 것이지, 손님에게 떠맡길 일이 아니다.
신정운 건설산업부장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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