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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화살의 논리와 방패·갑옷의 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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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09 09:02:37   폰트크기 변경      
검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실전적 현실

“누에는 따뜻하길 바라나 보리는 춥기를 원하고(蠶要溫和麥要寒:잠요온화맥요한) 나그네 맑은 하늘 기대하나 농부는 비를 기다리고(出門望晴農望雨:출문망청농망우) 뽕잎 따는 처자 날씨 흐리길 바란다(採桑娘子望陰天:채상낭자망음천).”


대만(臺灣)의 석학 남회근(南懷瑾,1918~2012)이 쓴 시(詩)의 일부다. 서로 다른 날씨를 고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늘의 심사가 편치 않을 것 같다. 사람은 그저 수시로 바뀌는 기상 여건과 때에 맞춰 순환하는 계절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하늘에 무슨 사심이 있겠는가?

인위적 현실은 이와 다르다. 당 태종의 정관정요(貞觀政要)는 ‘갑전지교(甲箭之敎)’라는 말로 입장 차에 따른 대립상황을 적시한다. “갑옷은 사람이 다칠 것을 우려하여 견고하게 만들고(夫作甲者欲其堅恐人之傷:부작갑자욕기견) 화살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예리하게 만든다(作箭者欲其銳恐人不傷:작전자욕기예공인불상)”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각자 역할에 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철저한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역할에 부합하는 이익을 넘어서는 사심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달 16일 검찰총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검찰로서의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대한 혐의는 4895억원 배임(대장동 사건)과 133억 뇌물(성남FC 사건)을 포함해 5가지다.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말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래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정치권은 격렬한 공방에 빠져들었다. 이 대표는 저항했고 민주당은 불체포특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활을 쐈고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라는 갑옷을 입고 불체포특권의 방패를 썼다. 활의 명분은 타당하고 화살의 논리는 강력한가? 방패·갑옷의 논거는 지속적 공격에도 견뎌낼 만큼 튼튼한가?

검찰은 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보편적 기준에 따라 이 대표의 기초단체장 재직 시 토착비리를 수사하고 영장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 대표를 사법처리하는 현실이니 정치탄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투명·공정한 수사로 이러한 주장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화살은 방패·갑옷을 뚫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다.

불체포특권 행사는 타당한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표결에 참여한 297명 가운데 139명이 찬성하고 138명이 반대, 9명이 기권(무효11표)하여 가결 정족수에 10표 모자라 부결됐다. 그러나 민주당 의석이 169석인 점을 감안하면 30명 이상이 부결에 동참하지 않은 결과다. 가결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표결결과의 함의는 분명해 보인다. 당내 선당후사 여론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독립적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 비리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표도 지난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스스로를 깨끗한 정치인이라고 천명하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약하지 않았는가?

민주당의 입장과 처신은 합당한가? 민주당의 주장 요지는 검찰이 조작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대장동 수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검찰이 시작해서 지금 덮을 수도 묻을 수도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성남 백현동 개발 비리와 ‘쌍방울 기업’의 불법 대북송금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사법 리스크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사실 이 대표에 대한 각종 혐의는 민주당과 상관이 없다. 단체장 시절 이 대표에 대한 개인 혐의를 민주당이 떠안은 것이다. 국민 여론을 경청하고 국회법에 따라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국민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였다.

최근 트롯 열풍이 불고 있다. TV만 틀면 트롯 방송이다. 지나친 편중을 우려하면서도 왜 자꾸 보는가? 전심전력하는 참가자의 태도에서 정치현실의 피로감이 씻기는 정화효과(catharsis effect)를 얻기 때문이다. 각 참가자는 수시로 달라지는 피아관계 속에서 경쟁·협조를 반복하며 최선을 다한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과거 행적에 문제가 제기된 참가자는 실력에 관계없이 하차한다. 아름답고 엄정한 각축이다. 이러한 각축이 우리 정치무대의 모습이라면 국민의 두통거리는 상당 부분 경감되지 않을까?


김인호  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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