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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공천 성공 요건, ‘현역교체율’과 ‘자기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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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07 16:41:17   폰트크기 변경      
상ㆍ하향식 공천, 제도적 우열보다 선용 여부 관건

국민의힘 전대에서 대통령 공천 지분 이슈화…“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


“지상의 모든 물체가 지구 중력에 영향을 받듯이 여의도의 모든 배지는 공천권의 영향을 받는다.”

여의도 정가에서 오가는 우스갯소리다. 공천이 현역 의원들 정치생명 연장 여부를 좌우하는 변수이기 때문에 공천권을 가졌거나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실력자의 의중을 살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상당수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이 대표에 대한 공개 비판에 나서지 못하고 막판까지 속내를 감췄다가 투표소 안에서 ‘가(可)’를 적어야 했던 것도 공천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체포동의안 부결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 대표에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가는 내년 총선 공천에서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저지를 위해 친윤(친윤석열) 성향 의원들이 연대서명을 하는 등 ‘집단 린치’에 나섰던 것도 내년 공천을 의식한 행동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당초 서명에 불참했다가 ‘비윤(비윤석열)’으로 낙인 찍힐 것을 우려해 뒤늦게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이 막판으로 갈수록 총선 공천문제는 아예 핫이슈로 부상했다. 안철수 후보는 김기현 후보를 겨냥해 정치권에서 금기시되는 ‘대통령 공천지분’ 문제를 집중 부각하며 김 후보와 차별화에 나섰다. 안 후보는 지난달 22일 제3차 TV토론회에서 김 후보를 향해 ‘윤석열 대통령과 공천 문제를 협의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김 후보가 윤 대통령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겨냥, ‘향후 총선 국면에서 윤 대통령이 공천지분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미로 ‘뼈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김 후보가 “당의 운영은 대통령과 같이 협의해서 하는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답하자, 안 후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대통령 공천지분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거론했다. 안 후보는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낙하산식 내리꽂기 공천”이라며 “주로 당선되기 쉬운 영남권이라든지 또는 서울의 강남권 같은 곳에 이렇게 무리하게 공천하게 되면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고 톤을 높였다. 안 후보가 영남권과 강남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공천지분에 따라 이들 지역구에 제3의 인물이 내리꽂기 식으로 공천될 경우 현역 의원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을 암시해 김 대표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갖도록 하려는 것이다.

정당 공천에서 계파수장이나 유력정치인의 지분이 인정되는 것은 구시대적 유습인 데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외적으로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특정인 의향이 공천에 반영되는 ‘공천지분’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유권자들에게는 사천(私薦)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당시 박근혜 대통령 측 공천지분 요구를 김무성 대표가 거부하는 과정에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촌극이 빚어졌다. 민심이 대거 등을 돌리면서 선거는 새누리당 참패로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은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돼 3년형을 선고받았다.

안 후보가 “헌법 제7조를 보면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가 있다. 만약 대통령과 공천에 대해 의논한다면 법적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를 안 후보가 공론화하며 선거 호재로 활용하려 했으니 안 후보와 윤 대통령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이 그간 음양으로 김 후보를 지원하면서 안 후보를 불리하게 만든 데 대해 안 후보가 작심하고 반격한 셈이다.

여야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찌감치 당내에 피아(彼我)가 갈리고 서로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에 올 연말쯤 막이 오를 공천 정국에선 ‘피바람’이 불 것이란 관측이 나돈다. 과거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던 친이(친이명박)계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켜 친박계 낙천자들이 탈당과 출마를 강행했던 공천파동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여야 각 당의 비주류 인사들이 공천 심사에서 ‘컷오프’되거나 사전에 낙천이 예상될 경우 ‘불공정 공천’을 외치며 탈당해 무주공산인 중간지대에서 다시 뭉칠 것이란 관측까지 나돌고 있다.


공천 성공의 요건...‘현역교체율’과 ‘자기희생’

공천의 성패(成敗)는 뒤이은 선거 결과로 바로 판명난다. 유권자들로부터 공천이 잘됐다는 평가를 받으면 정당 지지율이 올라가 당 소속 출마자들의 당선 가능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공천 출마자들은 본인의 인물 경쟁력에 더해 정당 프리미엄까지 안고 뛸 수 있어 유리하다.

성공적 공천의 첫 조건은 일정 수준의 ‘현역 교체율’이다. 역대 선거에선 통상 30% 안팎의 현역교체가 이뤄졌지만, 많게는 50%에 근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 혐오가 강하기 때문에 현역의원 낙천만으로도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당 지지율이 높은 ‘텃밭’ 지역구 의원들을 ‘희생양’ 삼아 대거 물갈이를 한 뒤 ‘개혁공천’ 바람을 일으켜 수도권 같은 접전지역으로 몰아가는 전략이 즐겨 사용됐다. 당의 입장에선 의정 경험이 많고 전투력을 갖춘 중진들 역할도 필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선수가 높다는 이유로 물갈이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평소 막말과 실언으로 당 지지도를 갉아먹는 의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으로 당의 신뢰를 떨어뜨린 의원 등이 우선적으로 걸러진다.

개혁공천의 또다른 조건은 ‘자기희생’이다. 계파 수장의 비위를 맞추느라 ‘홍위병’처럼 처신하는 의원, 진영 논리에 빠져 국민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도 모르고 방패막이 역할에 급급한 의원. 당 공관위는 이런 ‘국민 밉상’ 의원들을 낙천시켜 선거 악재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근래 선거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천 사례로는 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꼽힌다. 외부에서 영입된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상향식과 하향식을 적절히 섞어 구사하며 국민 만족도를 높였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친문계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시켰고, 친노계 좌장 이해찬 의원도 낙천됐다. 당시 정 의원은 “당의 승리를 위해 제물이 되겠다”며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 물갈이 효과를 배가시켰다.

반면, 최악의 공천은 보수정당 역대급 참패로 귀결된 21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이다. 지역구 공천자 명단이 번복되는 일이 다반사했고 위성정당 비례대표 공천자 명단은 통째 뒤집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대표와 공관위원장을 둘러싼 사천(私薦) 논란에 공관위원장 중도사퇴까지 겹치면서 수도권 민심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상향식ㆍ하향식 공천 장단점…제도 우열보다 선용 여부 중요


정당 공천은 흔히 ‘하향식 공천’과 ‘상향식 공천’으로 대별된다. 하향식 공천은 당지도부가 낙점하듯이 출마 후보자를 정하는 방식이다. 과거 ‘3김시대’에는 당지도부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공천이 좌우됐기 때문에 하향식 공천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3김시대 이후 당지도부는 중립적인 ‘공천관리위원회’에 주도권을 넘겨 공정한 시스템 공천을 지향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공천신청자 중에서 한 명을 정하는 ‘단수공천’, 공천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지역에 전략적으로 특정인을 공천하는 ‘우선추천’(더불어민주당에서 ‘전략공천’이라 일컬음) 등을 통해 하향식 공천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하향식 공천은 인지도가 낮거나 조직력이 약한 정치 신인의 정계 진출을 도와주는 장점이 있다. 지역구민들 사이 지지도보다는 당지도부 등 ‘윗선’과 교감이 충분히 이뤄지면 공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지도부를 비롯해 계파수장,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의 의향이 비공식적으로 공천에 반영되면서 불공정 공천, 밀실공천, 사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는 ‘공천파동’으로 이어져 탈당 뒤 무소속 출마가 강행되고 지지표 분산으로 민심이 등을 돌려 선거에 치명적 악재가 될 수 있다.

반면 상향식 공천은 ‘경선’을 통해 승자를 가린 뒤 당에서 공천을 주는 방식이다. 선거인단이 모두 당원일 수도 있고 일반국민이 ‘국민선거인단’이란 이름으로 일정비율 섞일 수도 있다. 투표 방식은 과거에는 투표소에 직접 가서 한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투표, ARS(자동응답시스템)투표 방식이 늘고 있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고 전화여론조사로 대체하는 경우도 적잖다.

상향식 공천이 정당민주주의 가치와 부합하기 때문에 명분 면에선 하향식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상향식에선 ‘현역 프리미엄’이 작용해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경선을 하게 되면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유리해 정치신인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정당 경선에 일반국민의 참여도가 낮아 국민선거인단이 대부분 의원이나 위원장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향식과 상향식 공천 자체를 놓고 제도상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느 쪽이든 제도를 얼마나 선용하느냐에 따라 공천의 성패가 좌우하게 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권혁식기자kwonhs@

권혁식기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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