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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의 건설이슈 파이팅]구조기술사회가 던진 '하청'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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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08 04:00:19   폰트크기 변경      
건축사협, 구조기술사 증원으로 반격

구조기술사회 “하청구조”

건축구조안전특별법 제정 촉구

중대재해 주로 건축물서 발생

전묵적 기술없이 공사수행 원인


건축사협회 “협력관계”

국민의 안전보다 업역확대 위한

집단이기주의 발상…제정 반대

구조기술사 수 늘리는게 우선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가 하고 대지의 안전, 건축물의 구조상 안전, 부속구조물 및 건축설비의 설치 등을 위한 설계 및 공사감리를 할때 자격을 갖춘 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건축법

‘건설사업자가 도급받은 공사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계획, 관리 및 조정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2인 이상에게 분할하여 하도급할 수 있다’-건설산업기본법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 간에 건축법의 ‘협력’이라는 문구를 놓고 논쟁이 불거졌다. 건축구조기술사는 ‘협력’이 건설산업기본법상의 ‘하도급’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건축사로부터 하청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건축사는 단어 뜻 그대로 협력관계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협력관계인데도 건축구조기술사가 건축사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왜 이런 논쟁이 불거졌을까? 그리고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한 곳은 건축구조기술사들을 대표하는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지난 1월19일 연 정기총회에서 건축구조안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강두현 부회장은 “설계자는 구조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관계전문기술자와의 협력이라는 조항을 통해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설계사에 협력하도록 돼 있다”며 “건축물의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구조에서 협력조항이 현실에서는 하청구조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건축구조기술사의 지위와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건축구조안전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건축법령에서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은 상당수다. 우선 법에 건축물은 고정하중, 적재하중, 적설하중, 풍압, 지진, 그 밖의 진동 및 충격 등에 대해 안전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하는 경우에는 구조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건축물의 설계자는 6층 이상의 건축물, 특수구조 건축물, 다중이용 건축물, 준다중이용 건축물, 3층 이상 필로티형식 건축물 등의 구조 안전을 확인하는 경우에는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감리의 경우에도 특수구조 건축물 및 고층건축물의 공사감리자는 특정공정에 다다를 때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하고 3층 이상 필로티형식 건축물인 경우에는 건축구조분야 특급 또는 고급기술자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 예방 위해 특별법 필요

건축구조기술사회는 건축구조안전특별법의 제정을 중대재해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사고가 주로 특수구조 건축물이나 재래공법을 대체하는 모듈화 공법ㆍ신공법이 적용되는 건축물에서 발생하는데, 이러한 사고 발생의 기본적인 원인은 특수구조 건축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없이 공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건설공사 현장의 감리는 기본적으로 건축사, 일반적인 건축시공과 관련된 경력자들에 의해 수행되는데, 이들은 대형화ㆍ모듈화ㆍ특수화되는 구조물에 대한 공학적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 건축법을 들었다. 건축법에는 건축물의 설계 및 시공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건축관계자라고 부르며, 건축관계자에는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건축물 안전의 실질적인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는 관계전문기술자라는 정의와 협력이라는 용어로 건축관계자의 보조자이자 하청관계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하청관계는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건축구조기술사를 전문가로서 사고조사위원회 등에 참여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건축관계자는 건축법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완화요구를 허가권자에게 할 수 있는 반면, 관계전문기술자에 속한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는 영업정지 등을 당할 때만 건축관계자 등이라는 명칭으로 건축관계자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 열악한 상태에 있다고 하소연했다.

건축법에서 정한 건축사의 독점적 설계 조항도 중대재해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1962년 건축법이 제정되고 10년 뒤인 1970년 1월1일 신설돼 5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건축사의 독점적 설계조항이 문제라는 것이다. 현행 건축법 제23조는 건축물의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못이 박혀 있다. 이에 따라 건축물 안전과 관련해 전문성이 필요한 건축구조설계는 법적 정의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건축구조설계와 관련된 발주 및 계약제도 자체가 전무한 상태로 50년간 이어져 건축구조설계산업은 낙후된 채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건축공사비를 10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건축공사비의 0.1%인 1억원이 건축구조설계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1962년 건축법 제정 당시 국민소득이 90달러에서 지금은 3만4984달러(2021년)로 크게 늘었는데 건축법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건축법에 대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건축용어 정의부터 다시하고 건축관계자 역할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법의 개정이 어렵다면 건축구조안전특별법의 제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집단 이익 위한 발상

건축사협회는 건축구조기술사회의 주장이 국민의 안전보다는 자신들의 업역 확대를 위한 집단이기주의의 발상이라고 치부했다. 건축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법개정이나 제정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축구조기술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축사는 매년 1000명이 배출되는데 건축구조기술사는 40명 안팎밖에 배출되지 않아 건축설계나 감리를 하는데 있어 건축구조기술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도내 건축구조기술사사무소가 4곳밖에 되지 않아 원하는 시간에 구조기술사의 조달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진행 중인 공사를 세우고 구조기술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간에 하청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건축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건축허가동수 2811동에 구조기술사 사무소는 308곳, 건축사사무소는 4691곳이다. 경기는 1만2672동 허가에 구조기술사 사무소 91곳, 건축사사무소 2370곳이다.

박성준 건축사협회 이사는 “전국적으로 건축구조기술사는 1200명가량이고 사무소는 600곳이 채 안되는데 비해 건축사사무소는 1만5000곳에 달한다”며 “구조설계나 감리를 맡길 때 경쟁을 부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로티 배관을 설치할 때 구조기술사로부터 현장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수적으로 적다보니 하루 출장비가 150만원에 이른다”며 “건축사는 하루 40만원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이사는 “전기, 통신, 소방은 이미 분리발주되고 있다. 분리발주시 문제는 없는지 따져보고 여건을 만들고 분리발주를 해야 한다”며 “수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건축사와 구조기술사의 협력관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분리발주에 앞서 구조기술사의 확대배출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축법에는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가 하고 대지의 안전, 건축물의 구조상 안전, 부속구조물 및 건축설비의 설치 등을 위한 설계 및 공사감리를 할 때 자격을 갖춘 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건축사와 구조기술사의 협력관계가 명문화된 것이다. 따라서 건축사와 구조기술사는 협력의 관계지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아니라는 게 건축사협회의 설명이다.

박 이사는 “건설현장의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문제다”며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건축물의 안전을 위한 법개정이라면 건축업계 전반이 모여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 치열한 논쟁 이어질 듯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앞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해 입법까지 끌고갈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여론조성을 위한 공청회 등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특별법 제정의 이유로 중대재해 예방을 내세웠다. 하지만 건축사협회는 업역 확대를 위한 집단이기주의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놓고 양측 간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설전문기자로 취재일선을 뛰면서 터득한 게 하나 있다. 업역과 관련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거다. 업역 문제라는 게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한쪽의 파이를 키워주면 다른 한쪽의 파이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양측은 한치도 물러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기사를 썼다가는 이해관계에 있는 어느 한쪽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사를 써야 할 상황이라면 보통 양시론이나 양비론을 펼친다. 이 업종과 저 업종의 주장이 모두 맞다거나 아니면 모두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물론 양시비론의 기사를 냈다고 매번 무탈하게 넘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양쪽 시비의 양이나 질을 놓고 따지면서 한쪽에 유리한 기사를 썼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업역관련 기사는 그만큼 쓰기가 어렵다. 그래도  양시비론이라도 기사는 써야 한다.  최소한 독자에게 판단의 기회는 줘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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