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언주로칼럼]국가가 돈을 써야 할 때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3-03-09 06:00:14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권해석 기자]돈은 경제의 혈액으로 종종 비유가 된다. 모든 거래가 돈을 매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활동 참여자의 현실적인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돈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충분히 소비와 투자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운영 기조는 민간 중심의 역동적 경제다. 경제 주체를 국가와 기업, 가계로 대략 나눠본다면 국가는 뒤로 물러서고 기업과 가계가 돈을 쓰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일 테다.

윤석열 정부가 정부 지출을 줄이는 긴축 재정을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정부는 짠물 재정 운용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예산을 전년 대비 5.1% 늘인 정부는 내년에는 4.8%, 내후년에는 4.4%로 예산 증가율을 떨어뜨릴 예정이다. 갈수록 돈을 덜 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빠진 자리를 기업과 가계가 잘 메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상품인 반도체의 지난 1월 제고율은 265.7%로 조사됐다. 1997년 3월(288.7%) 이후 가장 높다. 시장 수요보다 더 많은 반도체가 생산됐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생산된 제품 수출길이 막혀서다. 지난 1월 제조업 제고율도 120.0%로 전월(117.8%)보다 높아졌다.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고품이 창고에 쌓이는 상황에서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인력 확보에 더 많은 돈을 쓰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가계는 사정이 더 어렵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말 가계신용 잔액은 1867조원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증했다. 여기에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1%에 달하는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줄고 있다. 작년 4분기 가계 실질소득은 1.1% 감소했다.

남은 것은 정부뿐인데, 정부마저도 국가부채 증가를 이유로 곳간 문을 걸어 잠갔다.

경제 주체 모두 돈을 쓰지 않는데 경제가 과연 제대로 돌아갈까.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빠르게 늘어난 것은 맞다. 나랏빚을 계속 늘리는 것은 후대에 부담을 늘리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부모의 빚을 떠안길 바라는 자식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건전재정 추구는 상식에 가깝다.

그렇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상식적이다.

나랏빚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하면 다소 여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채무(D2) 국가채무 비율은 51.5%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5.0%다.

물론 고물가 때문에 당장 재정 집행을 확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고 지고지순하게 긴축만 외쳐서는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시기의 문제일 뿐 지금은 정부가 돈을 써야 할 때다. 제 때 보수를 하지 않아 집안 기둥이 무너졌는데, 빚은 물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세대가 좋아할 리 없다.

권해석기자 haeseok@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