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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전후시대의 망각…국익 앞에 다툴 이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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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09 06:00:26   폰트크기 변경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식민지 청년이라면 크게 3가지 삶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택해야했다.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한만(韓滿) 국경을 넘든지, 국내에 남아 분노를 삼키며 좌절감 속에서 살든지, 아니면 일본에 동조하며 출세의 길을 모색하든지..

1950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에 맞닥뜨린 한국청년이라면 두가지 기로에 섰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터로 갈 것인지, 아니면 총동원령을 피해 산속으로, 해외로 도피행각을 벌일 것인지.

우리 조부모와 부모세대는 국가의 온전함 여부가 개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살았다. 제국주의 세력에 국권을 빼앗긴 일제 36년은 한 국가의 일반 국민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했고, 공산주의 세력의 남침으로 온 국토가 전화에 휩싸였던 시기에는 생활 터전이 뿌리째 뽑힌 상태에서 총탄을 피해다녀야 했다. 그들은 국가의 온전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대를 살았으며, 그것을 위해 개인 삶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보내셨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국권침탈이나 전쟁 없이 70년을 보낸 행운의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외환(外患) 없이 두 세대를 거치는 동안 민주화도 진척되면서 지금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최고조로 존중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자연히 국가의 존재감이나 국권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옅어질 수밖에 없다.

1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반도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약소국이 강대국 침공을 받더라도 스스로 방어하는 길 외에는 무정부 상태인 국제사회에 뚜렷한 구제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성숙된 체제에서도 국가의 외피가 단단하게 버티고 있어야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 발 미사일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크라이나인의 현실이 그렇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피해자들이 1997년 12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재판은 끝났지만 또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 피해자들이 시종 원했던 것은 전범기업의 배상금이지만, 일본정부가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일 관계로 불똥이 튀었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고초를 겪은 것은 국가의 외피가 허약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양국 관계 정상화로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통상무역을 원활히해 더 높은 부국강병의 길로 가야한다.

국익 앞에서 우열을 다툴 수 있는 이익은 없다. 정부 지원 없이 여기까지 오면서 한이 얼마나 응어리졌을까마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조금만 양보해 돈의 출처만 따지지 않는다면 국익을 위하고, 본인들도 문제를 일단락지을 수 있다.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는 동안 협력과 교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해 불이익을 겪는 정부와 기업, 국민들을 생각해 부디 대승적인 양보를 호소한다.


권혁식기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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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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