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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채색한 50여년....김명식의 알록달록 '집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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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12 18:08:14   폰트크기 변경      
서울 청작화랑서 24일까지 개인전....'행복가득한 집'주제로 신작 26점 소개삼ㄹ의 의미 담아 붓대산 나이프로 작어

삶의 의미 담아 붓 대신 작은 나이프로 제작

경쾌하면서도 간결한 한국판 표현주의 미학 


“전업작가가 작업을 계속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 화가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은 대견하기도 하면서 가슴 한켠이 알싸합니다. 젊은 시절 붓을 들지 않았다면 지난한 길을 가지 않고 좀 더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어깨를 누르지요.”

'한국판 표현주의 화풍의 대가' 김명식 화백이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갑 기자

최근 경기도 용인 작업실에서 만난 김명식 화백(75)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나만의 작품세계를 갖고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 화백은 지난 50여년 동안 마치 강태공처럼 한국판 표현주의 미학 세계에 얽힌 세상의 흔적을 낚아왔다.

이런 김 화백의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이달 24일까지 펼치는 개인전이다. 관람객이 온몸을 열어 한국판 표현주의 양식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꾸민 교감의 향연장이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붙이고, 신작 26점을 풀어 놓았다. 오직 화가의 길에서 반평생을 버텨 이제 삶의 의미를 행복으로 포장하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평생 80회의 전시회를 연 노화가의 치열한 삶의 마지막 안식처로 ‘행복한 집’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외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사처럼 싸우며 작업에 몰두한 그는 화가들이 단색화,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형태를 선보일 때 한국적 서정주의를 접목한 표현주의 형태의 색채미학을 쏟아냈다. 고국산천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담아 캔버스에 붓 대신 라이프로 색채를 바르고, 찍어냈다.

중앙대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김 화백은 1990년대 도시외곽 개발로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고향(서울 강동구 고덕동)을 그린 ‘고데기 시리즈’를 약 10년 동안 발표하며 관심을 모아왔다.

2004년 롱아일랜드대 교환교수로 1년간 뉴욕에 머무르며 이를 더욱 확장한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시작했고, 10년 이상 매달렸다. 김 회백은 어느 날 뉴욕의 한적한 풍경을 보고 가옥의 형태나 색깔이 사람들의 피부색처럼 다르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벅찼다.

당장 화구를 꺼내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를 캔버스에 주워담았다. 창문을 통해 비친 성냥갑 같은 작은 집들의 모습에서 어릴 적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공들여 그렸던 ‘우리 집’이 생각났다. 뉴욕 동쪽의 작은 집을 보며 다문화 사회(멜팅포트)의 행복한 삶의 공간을 포착한 그의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경쾌하면서도 뛰어난 색채감각과 간결한 구도와 터치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뉴욕 리즈갤러리에 처음 선보인 이후 마이애미 디아스포라 바이브 갤러리(2006), 뉴욕 PS35갤러리(2007)에 잇달아 소개되며 그를 단번에 ‘인기 작가’로 끌어올렸다. 유화로 시작된 작업은 조각, 판화, 드로잉 등 영역으로 확장됐다.

2015년 8월 동아대를 정년 퇴임한 그는 처가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 작업실을 차리고, 작품의 변화를 시도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이고 너른 대지를 마주한 그는 원색 계통의 ‘컨추리 사이드(Country side)’ 시리즈를 새로 시도했다.
김명식 화백의 2013년작  '컨추리 사이드' 

자연 평화를 전하는 정겨운 풍경화 같은 그림이다. 녹색 풍경이 눈길을 끄는 신작은 집의 형태는 단순화되고 산과 들을 넓게 잡아 인간 태생의 시원인 자연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다.

미술 평론가 김윤석 씨는 “김화백의 ‘집’은 더 이상 혼자만이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자연의 품에 안긴 집의 포치는 전통 산수화(山水畵)의 점경인물(點景人物)을 닮았다”고 평했다. 김 화백만의 자연에 대한 해석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Countryside’ 시리즈는 중경(中景)에 힘을 주고 있다. 그만큼 넓은 시야가 확보됐다. 하늘 위 새의 시선을 빌어 바라본 부감(俯瞰) 시점은 한눈에 방대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조율해준다. 앞쪽의 드넓은 평야를 넘어 군데군데 자리 잡은 집들은 소외되거나 외롭게 보이지 않는다. 인간 태생의 시원인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서정적 고백인 셈이다.

그의 한마디가 귓전을 때린다. “보여지는 것이 어떤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김경갑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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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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