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 부동산시장의 화두는 바닥론이었다. 서울 ‘영등포 자이 디그니티’에 이어 둔촌 주공 무순위계약에 모처럼 수만명 인파가 몰렸다. 한국부동산원의 조사로는 송파구 아파트값이 무려 11개월 만에 반등했고 중견주택업체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 산하 주택산업연구원이 조사한 3월 아파트분양 전망지수도 73.6으로 작년 10월 이후 5개월 연속 올랐다. 심지어 지지옥션 집계상 경매시장마저 2월 평균 응찰자가 8.1명으로 2020년 6월 이후 최대치였다.
신문사 내에서도 격론이 있었다. 확 달라진 시장 분위기상 바닥일 수 있다는 주장과 작년 낙폭이 큰 지역 중심의 ‘데드 캣 바운스’란 반론이 맞섰다.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니 후자에 힘이 실렸다. 영등포 자이 성공에는 추첨제 물량을 늘린 정부의 청약제 개편이, 둔촌 주공 성공에는 지역ㆍ주택 소유 여부를 따지지 않는 무순위청약제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수도권 외곽과 지방 분양에선 1순위에 단 한명도 청약하지 않은 단지도 속출하는 양극화 장세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는 “1∼2월 떨어지는 속도가 완화돼 연착륙 가능성을 보여줬다”면서도 “부동산 대마불사가 계속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이 최악은 넘겼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의미로 읽힌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도 “국가가 바닥이란 사인을 줄 수 없다”고 전제했지만 “바닥 밑에 지하가 있을 수 있다”며 섣부른 바닥론을 경계했다.
개인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오세훈 시장과 김헌동 SH공사 사장의 합작품인 고덕강일3단지의 대성공이었다. 일반공급 경쟁률만 67대 1. 일각에서 ‘반쪽아파트’로 불린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시장에 먹힌 것이다. 지난 2008년 군포 부곡 택지지구의 실패를 경험한 기자로선 의아했다. 당시 군포 반값아파트는 389가구 모집에 65명이 청약했고 최종 계약한 소비자는 27명에 그쳐 결국 공공임대로 다시 돌렸다. 이어 MB정부 때 최고 알짜부지인 서초 우면동과 강남 자곡동에서 ‘반의 반값 아파트’로 불리면서 기대를 모은 청약의 경쟁률도 각각 8.5대 1과 3.8대 1에 그쳤다.
부동산을 재테크로 보는 대한민국에서 토지를 뺀 건축물만의 분양은 통하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지난주 반쪽아파트가 대박을 친 게 놀라웠다. 주택소비 트렌드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나? 흥행 요인을 따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수천만원만 있으면 입주가 가능하도록 금융지원이 집약됐고 3년 후 본 청약 때 포기해도 불이익이 없다. ‘빌라왕’으로 대표되는 전세사기 행각에 지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청년 특별공급이 주효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시장의 핵심 변수는 금리와 정책이고, 이를 좌우하는 게 정치, 특히 선거다. 다주택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취득세ㆍ양도세 완화조항을 담은 부동산세제 관련 개정법안들은 여전히 국회에 묶여있지만 올 하반기 달라질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으로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민심을 얻으려면 외면하기 어렵다. 1기 신도시특별법 등 지역부동산을 들썩일 추가법안들도 속속 통과될 것이다.
좀 과장된 듯 하지만 2030과 60대를 포괄한 당정의 세대 포위론에 부동산정책이 이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보수층을 깔고 청년층을 안으면 입법부인 국회 장악까지 가능하다고 믿는 총선전략이 반값아파트 성공을 이끌었다는 시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규제는 하나하나 풀릴 것이다. 지금은 바닥을 예단하기보다 앞으로 쏟아질 여야 정치권의 부동산 대책 및 공약과 시장을 찬찬히 살피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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