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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수주를 두려워하는 건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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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12 05:30:15   폰트크기 변경      
김국진 부동산부 부장

“올해는 네댓 개 단지에서 분양을 계획 중인데, 한두 곳 정도는 빠질 것 같다.” 최근 만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분양계획을 이같이 설명했다. 작년만 해도 전국 18개 단지에서 1만4000여가구를 계획한 곳이다. 그는 “너무 많이 줄인 것 같아 고민했는데, 비슷한 중견사 모임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가 제일 많더라”고 덧붙였다.


수위급 시행사의 한 임원도 “많아야 두세 개 사업지다. 요즘은 사업하지 않는 게 사는 길”이라며 울산 주상복합을 손절한 대우건설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그룹 계열 대형건설사의 한 임원은 “우린 주택에 별 관심이 없다. 민원만 계속 되고 남는 게 없어서다. 그룹에서도 하지 말라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을 기피하고 있다. 메이저 건설사들이 출혈경쟁을 벌인 서울의 재건축ㆍ재개발사업마저 단독응찰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지방권 비인기지역은 시공사를 못 구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앞서 유찰을 무한반복하고 있는 공공토목시장에 이어 민간건축시장에서도 수주산업인 건설산업이 수주를 두려워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 초 발표한 ‘주택 270만가구 공급’을 통한 중장기적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 위태롭다.

치솟은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줄어드는 완공 현장만큼 새 현장을 만드는 건설사의 전통적 사이클이 무너지면서 현장인력 구조조정이 횡행한다. 연관산업까지 실업난이 확산하면 실물경기도, 부동산경기도 회복하기 어렵다. 건설사들이 더 걱정하는 건 공기다. 건설노조 파업에 철근, 시멘트, 레미콘 품귀현상까지 되풀이되면서 현장마다 공기가 늦어 난리다. 알짜 재건축단지마저 입주시기가 늦어지고 지체보상금이 갈등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최근 만난 지방도시공사의 한 사장도 “수분양자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방치하는 정부가 더 문제”라면서 “지체상금은 반드시 물릴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기한을 맞추는 것은 과거 건설시장의 불문율이자, 건설사의 핵심역량으로 통했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레미콘 기사들의 ‘8ㆍ5제’ 투쟁을 시작으로 주52시간 근무제가 건설현장에 정착하고 비용 부담이 겹쳐 돌관공사가 힘들어졌다. 레미콘ㆍ타워크레인 기사의 파업과 태업에 자재 조달마저 차질을 빚는 반면 공기연장도, 공사비 보전도 제대로 안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건설산업계가 '건폭'으로 불리는 건설노조의 그릇된 관행 혁파에 나선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건설현장 정상화의 첩경은 예나 지금이나 ‘제값 주기’다. 악용돼서 문제지만 월례비도 초과근무에 대한 제값으로 출발했다.

건설역사상 최악의 시공환경 속에 정부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시기를 엑스포가 열리기 전인 2029년으로 6년 앞당기겠다고 한다. 그것도 건설노조의 입김이 가장 강한 지역에서. 앞선 새만금국제공항의 느린 속도까지 고려하면 국토부 표현인 ‘도전적 과제’라기보다 ‘불가능한 과제’로 보인다.


완공이 늦어지면 엑스포는 어떻게 되나? 좀 혼잡하겠지만 김해공항이 있다. 어차피 평창동계올림픽처럼 지역 SOC를 관철하는 지렛대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가덕도 신공항을 최악의 시공환경을 개혁하고 노조를 중심으로 한 건설현장의 오랜 부조리를 일소하는 테스트베드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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