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병식 삼성물산 ENG실장
건설로봇은 일반로봇과 수요 달라
공정ㆍ현장 가장 잘 아는 건설사가
개발 ‘이니셔티브’ 쥐어야 바람직
●박구용 현대건설 기술연구원장
드릴링ㆍ페인팅 로봇 등 발전에도
현장 요구 충족엔 역부족이라 합심
업계 최대 화두 안전문제 해결 나서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2021년 9월 일본에서 ‘건설 RX(Robot Transformationㆍ로봇 전환) 컨소시엄’이 출범했다. 2년 전 카지마 건설과 타케나카 공무원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된 건설RX에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정회원 26개, 협력회원 91개 등 총 118개사가 건설로봇 활성화와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참여 중이다.
지난 11일 ‘한국판 건설RX’도 태동했다. 국내 1ㆍ2위 종합건설사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건설로봇 기술 얼라이언스(동맹)’를 위해 뭉친 것이다. 콧대높은 삼성과 현대가 서로 손을 잡은 것부터 이례적인데다, 동맹 분야가 전통적인 건설산업과 거리가 먼 로봇 기술이라는 점에서 화제다.
이른바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이유는 무얼까. <대한경제>는 양사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소병식 삼성물산 ENG실장(부사장)과 박구용 현대건설 기술연구원장(전무)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소병식 부사장은 “척박한 건설로봇 생태계 개선”을, 박구용 전무는 “로봇을 활용한 생산성ㆍ안전성 해결”을 기술동맹의 목표로 꼽았다. 다만 소 부사장은 “기술의 디테일”을, 박 전무는 “기술의 미래지향성”에 좀 더 무게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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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식 삼성물산 ENG실장(부사장)./ 사진:삼성물산 제공 |
절박함이 탄생시킨 ‘로봇 동맹’
건설현장의 3대 요소는 인력, 장비, 자재다. 특히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건설인력은 최근 급속한 고령화와 숙련공 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 안전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난제를 로보틱스와 자동화 시공(제작)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글로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접근법이다. 건설로봇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현장 안전 관리 및 인명 사고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된다. 양사가 건설 로보틱스 분야를 성장동력 사업으로 선정해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최초로 2019년 3월 로봇 전담조직(robotics lab)을 만들어 자율주행 현장순찰 로봇, 무인시공 로봇, 통합 로봇 관제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spot)’을 현장에 투입해 안전관리 무인화도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은 2022년 4월 건설로보틱스팀을 신설하고 건설현장 안전 확보, 품질 및 생산성 제고를 위한 건설 로봇 분야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액세스 플로어(이중바닥) 설치, 앵커 시공, 드릴 타공 로봇 등 다양한 시공로봇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소병식 부사장은 양사의 건설로봇 기술협약에 대해 “국내 건설로봇 생태계가 너무 척박해 (삼성) 혼자 해결하기 벅차다”며, “나홀로 좋은 기술 만들기도 어렵고, 뒤따라와주는 기술이 있어야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구용 전무는 “업계 공통의 현안인 안전 문제를 건설로봇으로 풀 수 있을 것”이라며, “천공ㆍ드릴링ㆍ페인팅 로봇 등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건설현장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라 협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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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현대건설 기술연구원장(전무)./ 사진:현대건설 제공 |
개발사 아닌 건설사가 이니셔티브
건설로봇은 울퉁불퉁한 산악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4족 보행로봇 ‘스팟’이나 공중제비를 할 수 있는 직립보행로봇 ‘아틀라스’처럼 화려하지 않고, 식당 배달로봇처럼 친숙함과도 거리가 멀다. 양사의 로봇 기술 동맹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일부에서는 핵심기술 공유가 어려운 데다, 로봇 전문기업이 아니어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란 비관론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박구용 전무는 “우리가 새로운 로봇을 만들 순 없지만 건설현장에 최적화된 기능성을 갖춘 로봇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는 있다”고 말했다. 스팟의 경우 360도 카메라, 라이다(Lidar) 등 각종 장비를 장착한 뒤 건설현장에서 활용하고 테스트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해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병식 부사장은 “건설로봇은 일반 로봇과 달리 수요가 적고 개발회사도 많지 않아서 수요자인 건설회사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어야 한다”고 했다. 정적인 제조업과 달리 현장마다 제각각이고 복잡하다 보니 ‘동일 공정, 동일 디바이스’는 무용지물이다. 건설공정과 현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춘 건설회사야말로 건설로봇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사 CTO들은 기술동맹의 대상과 범위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소 부사장은 “지난해 5월부터 일본 RX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도 일본처럼 기술협약 대상을 늘려 건설로봇 활성화와 생태계 구축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무는 “로봇과 함께 자동화, OSC(탈현장 건설) 분야로 기술 공유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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