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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경쟁으로 치닫는 학교 내진보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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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28 06:00:20   폰트크기 변경      

예산 절반값에 공법선정 수두룩
업계 “공법 선정시 가격에 집중
금액 하한선 없어 저가투찰 빈번”
기술 고려 없어 날림 공사 우려도


[대한경제=박병탁 기자] 학교 시설 내진보강을 위한 공법선정이 업체들의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낙찰가는 공개하진 않지만 업계에서는 관련예산의 절반 안팎으로까지 떨어졌다고 추정한다. 이쯤되면 저가투찰이 아닌 ‘날림 공사’를 의심해야 할 정도다. 업계에선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발주처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A 초등학교 내진보강 사업에서 최종 선정된 업체의 추정 낙찰가는 4억4000만원이었다. 사업 예산(8억원)의 55%에 불과했다. 올해 3월 B초등학교 내진보강 사업의 추정 낙찰가는 8억4000만원으로, 사업 예산(17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비단 AㆍB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축물 내진에 특화된 방재신기술을 앞세워 2017년부터 학교를 포함해 공공건축물의 내진보강사업을 적잖이 수주했던 D업체 관계자는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1년 새 학교 내진보강사업을 수주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예산의 절반에 공사를 하겠다는 업체가 수두룩하더라. 어떻게 그 가격에 공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실제 D업체는 지난해 12월 30억원짜리 학교 내진보강사업에 기술제안서를 냈지만, 가격평가에서 탈락하면서 기술제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D업체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수주한 업체의 공사비를 역산해 보니 14억7000만원이 나오더라. 우리로선 말도 안되는 가격”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에 대해 업계는 학교 내진보강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발주물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공법선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격에 치중한 나머지 업체들의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서울시교육청의 ‘내진보강공법 선정위원회 구성 및 운영 지침’에 따르면 공법업체는 정량평가(20점)와 정성평가(80점)를 합산해 최종 결정한다. 정량평가는 △공사비(8점) △경영상태(4점) △사후관리(8점)로, 정성평가는 △시공성(30점) △안전성(40점) △경관성(10점)으로 구성된다.

일견 공사비 비중이 적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성평가를 받으려면 우선 정량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정량평가를 통과한 4∼5개 업체만을 대상으로 정성평가를 진행한다. 입찰 참여 업체가 수십개인 상황에서 4∼5개 안에 들어가려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량평가에서 가격(공사비)의 비중(40%)은 결코 적지 않다.

여기에 가격에 대한 평가 또한 출혈경쟁을 심화시킨다. 가격 평가는 8점에서 0점까지 5단계로 구분되는데, 문제는 가격 배점의 기준이 업체들이 써낸 제안가격의 평균이라는 점이다. 만점인 8점을 받으려면 입찰업체의 가격은 전체 제안가격 평균의 90% 미만에 위치해야 한다.

저가투찰은 업체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업체의 가격은 전체 평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드시 수주하려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가격은 한없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제안금액의 하한선이 없어 절반 이하의 가격을 적어내는 곳이 부지기수”라며,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정량 통과 후 정성으로 이어지는 2단계 평가를 할 게 아니라 기술적인 요소까지 고려하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내진ㆍ구조는 전문성이 짙어 우리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단순히 예산의 절반 가격으로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저가라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비 비중이 크다는 지적이 많아 정량평가의 기준을 바꾸거나 정성평가로 넘어가는 업체 수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병탁 기자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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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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