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백경민 기자] “영업 좀 살살 해 달라.”
주요 건설엔지니어링 업체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나온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뇌리에 박혔다. 당시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침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면서도 선뜻 내뱉을 수 없었던 금기였을까. 영업이란 말로 포장했을 뿐이지 사실상 로비를 자제하자는 일종의 항변이었는데도 들은 체 만 체 유야무야 넘어갔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냐며 반박할 법도 한데 말이다.
업계는 수년 전 로비 근절을 위한 자정 결의를 한 적이 있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로비가 워낙 횡행하다 보니, 앞장서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다. 자정 결의를 한 업체의 공동도급사가 로비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 이후로 전관 영입과 로비 수준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때와 같은 결의 수준의 자정 노력에 대해서는 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입법예고한 종합심사낙찰제 개선안과 행정안전부의 지방계약제도 개선 논의에 대한 반발도 결국 로비 문제 때문이다. 종심제는 전관 영입과 로비의 악순환을 끊어낼 만한 수준이 안 되고, 지방계약법상 종합평가낙찰제 도입과 지자체 PQ 재량권 부여 등은 지금과 같이 로비를 부채질할 게 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어찌 보면 로비가 횡행한다고 자인하는 꼴인데, 수사기관이 움직이지 않는 게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업계 로비 문제는 본지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보도됐다. 전관 영입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로비 없이 사업 수주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은 대부분 업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불거졌다. 로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를 감추는 데 급급하기 마련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도 싶다.
그렇다고 업계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로비를 했든, 받았든, 떳떳할 자격은 없다. 사업 수주를 방패막이 삼아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비겁한 변명이다. 이를 발주기관이나 입찰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본지 5월11일자 겉도는 건설엔지니어링 입찰 관련 기획보도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다”는 다소 힘 빠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2의 자정 결의는 정녕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로비의 굴레가 깊어도 너무 깊다.
백경민 기자 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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