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타개책으로 ‘해외건설’을 택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전략회의와 대외경제장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회의에 해외건설은 단골 아이템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 해외건설업계 전문가는 “작년 하반기부터 이 회의 저 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면서 “네옴시티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은 우려 먹는 사골곰탕처럼 언급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올해 해외건설 수주 목표액인 ‘350억불’이다. 현 정부 임기 내 목표치인 연 500억불 수주도 종종 거론된다.
정부의 염원과는 달리, 해외 건설시장은 녹록지 않다. ENR 기준 지난 2021년 250대 건설사의 해외 매출은 3978억달러로, 전년(4204억달러) 대비 5% 이상 감소했다. 전체 글로벌(국내+해외)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밑돌았다. 그만큼 건설사들이 타국에서 돈을 벌어들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해외수주 활성화를 위해 ‘350억불 달성’은 꼭 필요할까. 수주액은 말 그대로 수주 계약액이다. 일종의 매출액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별 업체 입장에서는 매출 만큼 중요한 게 수익성이다. 수주 목표액 달성을 강요받는 분위기는 프로젝트 중심의 양적 성장을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350억불은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한 데 말이다.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350억불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정부가 연간 350억불 달성이라는 숫자에 경도돼, 직·간적접으로 수주 압박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달 초 대경장 회의에서 주요 해외 프로젝트 15개를 선정해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프로젝트 단위로 살피겠다는 것 자체가 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다”며 “정부가 실무 차원의 프로젝트를 일일이 관리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피곤한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정부가 350억불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설사의 수익성을 높이고 시장 진출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로컬 콘텐츠’다. 중동 지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발주처들이 자국 인력과 기자재 사용을 의무로 하는 ‘로컬 콘텐츠’를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관련 가이드북이나 매뉴얼이라도 제작해 배포해 달라는 게 중소ㆍ중견 건설사의 불만 섞인 토로다.
해외건설 시장은 대전환의 기로에 놓여 있다. 건설사들이 탄소포집저장(CCUS) 기술을 비롯해 도심항공교통(UAM), 소형모듈원전(SMR) 등 신사업을 대거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50억불 달성보다 중요한 건 글로벌 경쟁력 확보다. 지금은 건설사의 체질 개선을 조용히 기다려주는 정부의 미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홍샛별 기자 byul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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