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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로 읽는 현대사](15)부산 메리놀수녀병원-국내 첫 노출콘크리트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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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26 04:00:17   폰트크기 변경      
그 뒤엔 ‘공학도 수녀’ 있었다-바이브레이터 활용도 처음

삼환기업, 일본식 공법 벗어나 타설 기계화-‘건축명가’ 명성 얻는 계기돼

당시 메리놀병원 현장감독이던 아가스타 수녀 협조와 알선 있어 가능

병원설립, 미 위트컴 장군도 인연-예하부대 장병들 월급의 1% 기부

부산 메리놀수녀병원의 현재 모습. 처음 지상 3층에 160병상으로 지어졌으나 이후 증축과 신축이 더해져 현재 427병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이름도 메리놀병원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

요즘은 외벽을 콘크리트 그 자체로 마감하는 노출콘크리트가 일반화돼 있다. 단지 도색을 하느냐, 아니면 콘크리트 색상 그대로 두느냐의 문제일뿐이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만 해도 노출콘크리트는 전에 보지 못했던 신공법이었다. 콘크리트를 치고 그 면위에 몰탈 미장을 해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내 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공법이 도입된 공사는 1955년5월10일 착공된 지상 3층에 160병상의 부산 메리놀수녀병원이다. 시공사인 삼환기업은 1979년 발간한 삼환33년사에 ‘부산 메리놀수녀병원의 신축공사는 삼환기업으로서나 한국건축계로서나 하나의 신기원을 이룬 획기적인 공사였다’고 적었다.

웬만큼 나이먹은 건설인이라면 삼환기업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마 ‘건축공사’일 것이다. 1946년 3월 설립한 삼환기업은 2017년 기업회생절차 개시결정이 내려지고 2018년 6월 SM그룹에 매각되기 전까지 건축공사를 잘하는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삼환기업이 건축공사에서 유명세를 얻은 것은 1955년 5월 착공한 부산 메리놀수녀병원 건설이 계기가 됐다. 삼환기업은 이 공사에서 국내 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공법을 도입하고 최초로 콘크리트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했다.

‘사실 당시의 삼환기술진들은 기술용어로서의 익스포즈드(노출) 콘크리트 마감이니, 상판 바닥 모나리틱 휘니쉬니, 인력으로서가 아닌 기계로 하는 바이브레이터란 콘크리트 믹서라는 단어가 기술용어로서 무엇을 뜻하는가 조차 모르고 있었을 형편이었다. 그러나 젊고 패기왕성했던 최종환사장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기술을 우리가 못할 까닭이 없다는 자신을 갖고 현장직원들을 독려하며 공사에 임하게 했던 것이다’-삼환33년사

삼환기업은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적용하기 위해 우선 형틀부터 개선했다. 형틀을 정확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리고 튼튼하게 공정에 맞춰 조립했다. 이를 위해 우수한 목수를 구해야만 했다. 콘크리트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는 것도 숙제였다. 재래식 인력비빔으로는 균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 믹서를 이용해 콘크리트 비빔 과정을 기계화했다.

‘콘크리트 그 자체면이 마감면이 되므로 형틀 제거후 그 면이 세밀하여 유리알같이 매끈해야 하며 면 전체가 균일한 질감을 내야 하고 동시에 형틀이 짜여진 형태대로 구석구석이 완전하게 콘크리트가 채워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과거 일본 기술자로부터 물려받은 콘크리트 타설공법인 소위 곰보대라는 대나무로 다지는 공법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바이브레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이 바이브레이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콘크리트 타설시 과정을 한국 최초로 기계화한 것이다’-삼환33년사

삼환기업이 메리놀수녀병원 신축공사에 새로운 공법을 적용하자 다른 업체들도 차츰 이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삼환기업은 콘크리트를 잘 친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 이후 수십년간 ‘건축하면 삼환’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일본 기술자로부터 물려받은 일명 곰보대라는 대나무로 콘크리트를 다지는 재래식 공법.                        삼환33년사 발췌 
삼환이 국내 최초 수입한 바이브레이터로 타설하는 모습.                                                                  삼환33년사 발췌


삼환기업이 당시로서는 듣도보지도 못한 공법을 메리놀수녀병원 신축공사에 적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메리놀병원측의 현장감독인 아가스타 수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아가스타 수녀는 미국 공대출신으로 건축분야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섬세하고 깐깐한 성격이어서 철근에 녹이 슬면 와이어부러시로 닦아 녹을 떼어내야 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 아가스타 수녀는 바이브레이터 구입에도 도움을 줬다. 삼환기업은 수녀의 주선으로 대당 500달러에 2대를 미국에 주문할 수 있었다. 삼환33년사는 ‘아가스타 수녀의 협조와 알선으로 익스포즈드(노출) 공법을 최초로 도입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고 썼다.

하지만 삼환기업과 아가스타 수녀가 처음부터 협조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삼환기업은 공사를 낙찰받고 나서 계약과정에서 아가스타 수녀와 예기치 않은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아가스타 수녀가 공사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과 성례를 올릴 준비를 하면서 “최사장은 어느 교회를 나가십니까?”하고 물었다. 최사장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에 나가고 있지 않아서다. 고지식한 최사장은 고개를 저으면서 자기는 가톨릭신자가 아니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사실 최사장은 모친이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불교의 감화를 많이 받았으면 받았지, 가톨릭신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가스타 수녀는 계약서에 성수를 뿌리려는 신부와 함께 돌아가 버렸다. 다행히 수녀들은 이 문제를 놓고 장시간 논의한 끝에 “이 공사가 끝날때까지 최사장이 성당에 다니게 될 것을 믿는다”는 말을 간곡히 하면서 계약서에 서명하고 성수를 뿌렸다’-삼환33년사

우리나라 건축공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아가스타 수녀는 미국인으로, 본명은 메리 호크다. 메리놀수녀원 서울사무소에 따르면 1998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수녀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했다고 한다.

메리놀수녀병원장 안제리카와 아가스타(오른쪽) 수녀. 아가스타 수녀는 1998년 선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환33년사 발췌


메리놀수녀병원은 1953년부터 2년동안 부산의 미군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지낸 리처드 위트컴 장군과도 인연이 깊다. 위트컴 장군은 메리놀수녀병원의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을 보면 1954년7월29일 기공식이 열린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삼환기업의 건축공사 착공시점인 1955년5월10일 보다 10개월 정도 앞선다. 아마도 미군 장비를 동원해 기반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위트컴 장군은 공사가 시작되고 공사비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예하 미군 장병에게 월급의 1%를 공사비로 기부하게 하며 지원했다. 그리고 한복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시내를 활보하며 병원 건립기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미국 격주간지 라이프 1954년10월25일자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위트컴 장군’을 연재한 국제신문은 메리놀병원이 우여곡절 끝에 착공 8년 만인 1962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종합병원을 준공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삼환33년사에는 ‘원래 이 공사는 자재의 전량을 발주자인 병원측에서 대주고 삼환은 용역만 맡은 공사였으나 발주자의 자재공급이 늦어져 공기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 2년이나 지연된 공사였다’고 기록돼 있다.

지상3층에 160병상의 병원건물을 짓는데 2년의 지연기간을 빼고 5년6개월의 공기를 줬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삼환기업이 지은 건물동외에 전체 병원의 모습을 갖춘게 1962년 11월이 아닌가 한다. 메리놀수녀병원은 이후 신축과 증축이 더해져 현재 427병상이 운영되고 있다. 이름도 메리놀병원으로 불리우고 있다.

아무튼 메리놀수녀병원은 우리나라 건축공사 역사에 한획을 그은 건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삼환33년사는 ‘메리놀수녀병원공사 이후 종래 콘크리트철판에서 6명의 콘크리트공이 3명 2열로 서서 철판 양쪽에서 부지런히 삽을 놀리며 자갈, 모래, 시멘트와 물을 부어가며 인공혼합을 했던 일본식 공법이 이 땅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고 적었다.<참고:한국건설통사 삼환33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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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
권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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