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회 연속 3.50%로 동결했다. 우리나라는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 중 선제적으로 금리동결에 나섰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묶으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는 1.75%포인트가 유지됐다. 미국과의 금리역전이 처음은 아니지만, 역대 최대 폭 금리역전임에도 한은은 ‘추가 인상 없이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동결 때 “안개가 가득해 방향을 몰라 차를 세운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한은이 주시하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스탠스는 방향성이 분명하다. 연준의 인플레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다시 오름세를 타면서, 미국의 6월과 8월 금리 결정에 변수가 됐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금리는 쉽게 내리기 힘들다.
이 와중에 한은 총재의 발언은 혼돈스럽다. 이창용 총재는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리 격차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연내 0.25%를 올릴 경우 한국은 환율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 금리인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안정이다. 금리인하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는 도둑’처럼 우리의 자산가치를 증발시키는 불청객이다.
한은의 물가 성장률 목표치는 2%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증권사 전망이 오히려 명쾌하다. KB증권은 “역기저효과로 올 7~8월은 2%대의 물가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재차 3%대로 반등할 것이며 공공요금 인상으로 하반기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 성장률 목표치는 언제 달성할 것인지 계획이라도 내놓길 바란다. 통화정책이 먹히려면 중앙은행이 할 일은 하고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줘야 하는데 두리뭉실한 답변에 머물 때는 아니다. 경기를 살리겠다며 금리 동결에 나섰지만, 한계기업에 산소호흡기만 달아준 것은 아닌지 살필 일이다. 저금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면서 통화정책 무용론이 만연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직접적으로 요구했고, 한은은 기준금리를 1월 이후 동결했다. 집값은 다시 꿈틀대고, 물가는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달러당 원화값은 1300원대에 머문지 오래다. 불안한 경기상황 속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정치권과 정부의 포퓰리즘도 활개를 칠 것이다.
한은은 원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통화정책의 정상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 키우기가 기준금리 딜레마를 극복하는 최우선이겠으나,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수입물가와 무역적자 부담이 심해진다. 안갯속 관망을 끝낼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치가 뚜렷한 기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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