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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진정한 사랑과 존중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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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6-02 15:57:54   폰트크기 변경      

우리는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으나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 더욱 늘어나고 반목과 갈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이기적인 삶이 근본원인이다. 이 때문에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간 선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늘 부럽고 존경스럽다.


최근에는 퇴계선생의 맏손자(몽재 이안도: 1541~1584)이 문집인 ‘몽재선생문집’을 읽으며 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 몽재는 할아버지인 퇴계의 사랑과 가르침을 누구보다 듬뿍 받고 자랐기에 그의 문집은 퇴계와 집안의 속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집을 읽다가 그의 아내 안동권씨(1542~1606)의 묘비문에 눈길이 갔다. 이에 따르면, 권씨부인이 열아홉 살에 시집왔을 때 시할아버지 퇴계는 새신랑인 맏손자에게 편지를 보내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므로 지극히 친밀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바르고 조심해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부부는 서로 귀한 손님처럼 공경(相敬如賓)해야 한다”고 일렀다.


몽재는 이 가르침을 잘 지켜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였고, 그렇게 존중받으며 살아온 맏손부 역시 시할아버지 퇴계선생과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20여 년을 더 살면서 집안을 잘 이끌었다. 임진왜란의 전화 속에서도 퇴계선생의 책과 유품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젖이 모자라 두 돌 만에 잃은 외아들을 대신하여 늘그막(65세)에 어렵사리 양자로 대를 잇게 되자 종부로서 소임을 다했다면서 곧바로 세상을 하직했던 강인한 삶이었다. 그 정절을 기려 당시 조정에서 내린 정려(旌閭)가 지금도 퇴계종택 솟을대문 위에 걸려 있다.

권씨부인의 일화와 관련하여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것이 더 있다. 하나는 한문사대가의 한 분이었던 택당(이식: 1584~1647)이 권씨부인의 묘비문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 배경에는 양 가문간의 거룩한 인연이 있다. 폭군 연산군이 그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왕비로 복위시키려고 광분할 때(1504년)다. 택당의 고조부(용재 이행: 1478~1534)는 권씨부인의 할아버지(동계 권달수: 1469~1504)와 홍문관에서 반대 글을 올렸다가 죽을죄로 몰렸다. 그때 동계는 조사를 받으며 자기 혼자 한 일일뿐 다른 사람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즉시 극형에 처해졌지만 용재를 비롯한 나머지는 죽음을 면하고 유배를 갔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자 용재는 동계의 묘지문을 지어 그의 의리를 칭송하였고, 두 집안의 이와 같은 인연을 기억하는 택당 또한 권씨부인의 묘지문을 지으면서 운명인 듯하다고 술회하였다.

또 하나는 택당에게 권씨부인의 묘지문을 요청한 사람이 부인의 외손자 형제(홍유환, 홍유형)였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도 외할머니의 넘쳐나는 외손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대를 이을 양자를 잇기 전 더 먼저 태어난 외손자 형제에게 외할머니는 사랑을 한껏 주었던 듯하다. 퇴계선생의 대표저서인 ‘주자서절요서문’이 본가가 아니라 외손자의 집안으로 건너간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자란 외손자 형제는 외할머니의 값진 생애를 후대에 잘 남겨 보답하고자 당대의 명사 택당을 찾았던 것이다.

한편, 이들 외손자의 증조부(치제 홍인우: 1515~1554)는 퇴계가 무척 아낀 후배였다. 두 사람은 학문의 결은 달랐지만 배척하지 않고 도탑게 사귀었는데, 치제가 먼저 세상을 뜨자 퇴계는 매우 애석해했다. 1569년 3월 마지막 귀향길에서 퇴계는 여주 신륵사 나루에서 오래전 치제의 금강산 유람을 안내한 스님을 우연히 만나자 그를 회상하며 눈물로 시를 남겼다. 그리고 이듬해 고향 도산으로 그의 아들이 찾아오자 “친구는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고 칭찬하였다. 그해 퇴계가 세상을 떠났지만 동갑내기인 퇴계의 맏손자(몽재)와 치제의 아들은 절친한 사이가 되더니, 몇 해 뒤에는 자녀를 혼인시켜 두 집안은 사돈이 되었던 것이다.

퇴계의 손자 내외에 대한 속 깊은 사랑과 후배와의 인격적 사귐, 그리고 동계의 숭고한 동료애 등이 엮어낸 아름다운 결실은 이렇듯 오래오래 전해져 오늘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간 역사 속 선현들의 큰 가르침을 잊지 말고 실천해야겠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前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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