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언 씨가 서울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의 개인전에 출품한 신작 ‘비욘드 더 리미트((Beyond the limits)’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경갑 기자 |
정보와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정보나 이미지를 취사선택, 나름의 사유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MZ세대 인기화가 김제언 씨(31)는 “정보나 이미지가 난무하는 일상 그 자체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특별할 것 없는, 누구나 같이 누리는 ‘일상’에서 예술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에겐 일상의 날것들을 복잡하게 분석하거나 치장하는 것조차 거추장스럽다. 무엇이든지 특정 프레임에 가두려는 세태에 대한 경종으로도 읽힌다.
김 씨가 이런 ‘예술의 일상성 회복’을 화두로 내걸고 오는 1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펼친다. 이제 막 마라톤 같은 미술 인생을 시작하는 예술정신을 전시장 전면에 펼쳐놓았다. 어쩌면 누구나 공감하고 누리는 일상의 감성을 현란한 원색으로 터치한 작업이 묘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김 씨는 “제 작업들은 온갖 정보와 이미지에 덧씌워진 가림막들을 제거해야 드러나는 일상을 색채미학으로 승화했다”며 “관람객들에 어필하려 너무 서술적이고 자연스런 요소가 강하다”고 강조했다.
‘당신의 황금 기타(Your golden guitar)’ /사진 : 가나포럼스페이스 제공 |
◆‘열정 바이러스’만을 축출해 화면을 꽉 채운 24점
‘비욘드 더 리미트(Beyond the limits)’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아버지 화실에서 풍기던 넉넉한 유화 냄새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미술 학원을 드나들며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들이마신 영감을 ‘죽어라’ 그림으로 승화한 젊은 전업 작가의 감성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배치된 24점의 ‘이색적인 그림’은 번득이는 상상력과 감성적 에너지를 단순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융합한 근작이다.
김 씨는 “이번 신작은 경제 침체에 부대끼는 일반인들의 삶에서 끈없는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열정 바이러스’만을 축출해 화면을 구성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세종대 미대를 졸업한 김 씨는 최근 만화처럼 방실방실하게 그린 작업으로 지난해부터 인기작가 대열에 끼었다. 경매 행사 때마다 컬렉터들이 몰렸고, 개인전에서는 ‘완판(완전 판매)’이 이어졌다. 디지털시대 현대인의 일상을 간결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서인지 국내 미술시장에서 두터운 애호가층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과 가르침 덕에 감성의 텃밭을 풍요롭게 했다”며 “요즘도 예술가의 길에 막막함이 느껴지면 평생을 그림에 매달리는 부모님의 열정과 끈기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동안 사람들이 잃어버린 사랑과 사람, 희망을 화면 위로 불러오는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기술자’ 역할을 자처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골라 화면 깊숙이 채워넣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을 ‘소확행 예술’의 전사로 몰아붙이는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그림을 구상할까. 그는 특유의 액션 묘사가 돋보이는 인물화를 비롯, 비행선을 의인화해 우주를 향해 여정을 떠난 사람, 출구없는 버스를 타고 샹그릴라(이상향)을 찾는 사람, 황금색 기타를 치는 싱어송라이터의 열정, 소중하고 값진 가치에 집중하다보면 노란 달도 검게 보일 수 있다는 두 연인의 집념, 그림 아이디어를 채집하며 고진감래의 순간을 맛보는 자신의 긍정적인 상황 등에 눈길을 돌린다.
작품의 소재가 뭐냐고 물으면 “우리들의 꿈과 희망”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얀 캔버스이지만 색감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자연스레 소통하기 때문이란다.
’당신의 특별한 밤(Your especially long night)’ /사진: 가나포럼스페이스 제공 |
◆이미지와 텍스트 융합 시도한 팝아트
그의 작업은 대개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그림보다는 다소 평면적이다. 현란한 색채와 거침없는 붓질을 통해 최소한의 심플한 화면을 구성한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경계를 허물면서 감성적 서사를 확장하기도 한다. 미디어와 디지털 시대환경의 세례를 받아 MZ세대의 일상을 녹여낸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제 작업은 여유롭고, 저 또한 한가로워 보통 사람들의 감성을 쉽게 승화시키길 원해요. 제가 만든 작품은 소설이나 시처럼 여운이 묻어나게 신경씁니다.”
김 씨는 “모든 그림에는 그 나름의 규칙과 스토리가 있다”며 “화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림을 그릴 때도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외적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 만큼 규칙과 스토리를 넘나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화면에 텍스트를 살짝 끼워넣어 스토리텔링 미학을 연출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꿈과 희망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죠.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일곱색깔 무지개(희망)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에 꿈과 사랑 주는 ‘소확행 심미론’
그는 앞으로 미술가로서의 당당한 포부도 내비쳤다. “많은 사람들의 꿈과 사랑, 희망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서질 듯 약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고, 사랑이 되는 모습을 염원해요. 그렇게 함께하는 세상이 결국 제가 바라고 원하는 예술이거든요.” 예술에 세상이 따르는 것이 아닌, 세상 뒤에 작은 예술이 있다는 ‘소확행 심미론’을 에둘러 표현했다.
김경갑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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