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형 건설자재 제조사 A임원과 시멘트 가격 인상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왜 시멘트에 이렇게 관심을 보일까 의문이 들던 찰나, A임원의 숨은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시멘트 가격 논란이 심화될 경우 건설자재 시장에 정부 개입의 가능성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건설자재 중에는 시멘트처럼 시장 과점상태인 종목이 여럿 있다. A임원의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이 바로 지난 2년간 과점상태에서 글로벌 원자재 수급 대란을 빌미로 제품 스프레드(살 때와 팔 때의 가격차)를 과도하게 벌리며 수요업계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제품이었다. A임원은 “그래도 관계부처가 달라 개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급 업계를 대변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수요 업계를 관리하는 국토교통부의 업무 공백 사이에서 특정 건설자재의 가격 고삐를 죌 ‘손’이 없다는 뉘앙스였다. 가격 인상의 틀까지 마음대로 주무르며 건설업계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와도 대형 로펌을 통해 법적 검토까지 마쳤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021년부터 시작된 원자재 공급망 위기를 빌미로 원가 인상분 이상의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한 건설자재는 두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이 중 상당수 제품들의 국내 제조기업이 3∼7개사로 한정돼 있고, 이들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사실상 과점 상태에서 눈치 보지 않고 가격을 올림으로써 스프레드 확대만으로 취한 이익을, 기업 혁신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조만간 ‘손’이 등장할 모양새다. 국제 원자재 시세가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시멘트 업계가 오는 7월부터 14% 가격 인상 계획을 발표하자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탓이다.
국토교통부는 건설분야에서 필수적인 장비, 자재에 대해서는 특정 업종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거나, 수급을 조절할 수 없도록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건설산업기본법 안에 동반성장위원회와 같은 가격ㆍ수급 협의체를 마련해 제도적으로 과점시장의 제품 제조사들이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거는 기구를 만들 방침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과거 산업통상자원부가 특정 자재 수급대란 시점에 가격 협의체를 만들면서 이를 제도화하지 않고 업계에만 맡겨 놓다 보니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해석해 자재 공급사들이 과징금을 낸 전력이 있다”며, “정부가 업계를 불러 가격ㆍ수급을 협의하도록 하는 것은 담합 소지가 없다. 산업부 협조 없이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산업기본법 내에 협의체가 구성된다면 시멘트만 대상이지는 않을 것이다. 철강재부터 목재, 실리콘, 유리 등 과점상태로 생산되는 다양한 건축자재들에서 가격 및 수급 논란이 발생하면 얼마든 협의 품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과도한 이익 선취가 건설현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면 단호한 ‘손’이 필요하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의 과감한 정책추진을 기대해 본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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