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Enjoy Life] 계곡 따라 흐르는 ‘풍류’ 어떠한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3-07-10 06:00:32   폰트크기 변경      

변산반도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직소폭포. /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산과 바다는 영원한 라이벌이다. 그래도 여름에는 바다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땀 흘리며 오르는 산보다는 시원하게 ‘풍덩’ 빠지는 바다가 피서에 제격이다. “뭘 모르는 소리”라는 반론도 있다. 시원한 산그늘이 뙤약볕 해수욕장에 비할까. 전세를 역전할 반전도 숨어 있다. 바로 산이 품고 있는 계곡이다. 계곡 물에는 ‘풍류’도 함께 흐른다. 옛사람들이 산으로 갔던 이유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계곡으로 떠나보자.

△선비들의 놀이터…서울 수성동 계곡

인왕산에서 서촌을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옥류동천.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개발 과정에서 하천을 아스팔트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류 계곡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수성동 계곡 / 사진 : 김정흠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수성동 계곡은 왕족과 사대부가 자주 찾은 곳이었다고 한다. 뒤로는 인왕산이, 앞으로는 저택과 경복궁이 펼쳐지는 명승지였다. 겸재 정선은 ‘장동팔경첩’에 수성동을 남겼고, 19세기 학자 유본예가 한양의 관청과 궁궐, 명승지를 한데 묶어 소개한 ‘한경지략, 작가 불명의 지리서 ‘동국여지비고’에서도 수성동 계곡의 빼어난 경치를 기록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비 내리는 날 수성동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시를 썼다고도 한다. 그런 물소리가 바로 ‘수성동(水聲洞)’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으리라. 평소에는 물이 많지 않다. 비가 많이 내린 후에야 ‘수성’의 명성을 들을 수 있다.


수성동 계곡 통돌다리 / 사진 : 김정흠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1971년 계곡 좌우로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섰는데 40여 년이 지난 2012년 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 계곡을 복원한 게 지금의 모습이다.

그런데 겸재 정선의 ‘수성동’이라는 그림이 없었다면 이곳은 지금 계곡이 아니라 공원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림 속 돌다리, 기린교가 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발견되면서 공원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접고 계곡을 복원하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기린교는 길이 3.8m 장대석 두 개를 붙여 만들었다. 한양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됐으며, 통돌로 만든 가장 긴 다리다. 기린교가 발견된 덕분에 수성동 계곡은 우리 곁에 남았다.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림이 다시 풍경을 복원한 셈이다.

복원된 수성동 계곡은 190m 정도로 길지 않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감동의 길이는 짧지 않다.

물놀이를 하기에는 수량이 충분치 않다. 발을 겨우 적실 만큼이다. 그래도 너른 바위에서 쉬어 갈 수 있다. 시를 읊고 노래 부르던 선조들처럼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겨보자.



△‘신선놀음’이 이런 걸까…동해 무릉계곡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은 기암괴석과 폭포가 환상적이다. 사시사철 사랑받지만, 특히 여름에는 탁족을 하려는 이들이 모여든다.


무릉계곡의 시작인 호암소 / 사진 : 채지형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계곡은 호랑이가 건너다 빠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호암소부터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이 눈길을 끄는 용추폭포까지 약 4㎞다. ‘무릉’이라는 이름은 도연명의 산문 ‘도화원기’에서 깊은 산 속에 숨은 낙원을 이르는 ‘무릉도원’에서 유래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신선교가 나온다. 마치 인간계와 선계의 경계 같은 느낌이다. 다리에서 바라본 산세가 장중하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약 5000㎡(1500여 평) 너럭바위를 만난다. 계곡에 누워있는 넓은 바위를 자주 봤지만, 이곳 바위는 크기나 아름다움에서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바위에는 글과 이름이 수두룩하게 새겨져있다. 이름을 새긴 사람이 8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자기 이름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이런 게 아닐진데…. 지금이라면 벌금을 낼 일이지만, 바위에 옛사람들의 흔적이 함께 전해온다고 인정해주자. 암각서 가운데서는 조선시대 명필 봉래 양사언의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을 으뜸으로 꼽는다.


너럭바위에 새겨진 이름들 / 사진 : 채지형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무릉반석 부근 표지판에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눈에 띈다. 단원은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화폭에 담았는데, 「금강사군첩」에 실린 ‘무릉계’가 무릉계곡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 풍경과 현재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리를 건너면 고찰 삼화사가 나오는데 길가에 늘어선 십이지신상이 눈길을 끈다. 각자 자기 띠 상에 동전을 올린다.

삼화사를 지나서는 경사가 완만한 길이다. 숲이 햇빛을 가려주고,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계곡 양옆으로 가파른 절벽이 소나무와 어우러져 진경산수화 같다. 커다란 옥류동, 선녀탕 등 볼거리가 이어진다. 선녀탕은 진짜 ‘목욕탕(?)’ 같은 모양이라 더운 여름날에는 더더욱  ‘풍덩’ 뛰어들고 싶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는 쌍폭포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제공


삼화사에서 천천히 1시간30분쯤 걸으면 쌍폭포와 용추폭포가 등장한다. 두타산에서 내려온 물이 돌계단을 타고 흐르는 왼쪽 폭포와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떨어지는 오른쪽 폭포가 어우러진 게 쌍폭포다. 안쪽으로 더 가면 물이 3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가 있다.

무릉계곡 입구에는 토속음식과 막걸리는 파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옛사람들처럼 계곡에 상을 차릴 수는 없지만 식당에서라도 풍류를 즐겨보자. 계곡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한잔할 수 있는 자리가 인기다.



△아홉 절경 펼쳐지는 괴산 화양구곡

충청북도 괴산은 우뚝 솟은 산과 깊은 계곡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데, 그중 압권이 화양구곡이다. 괴산 화양구곡은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에 흩어져 있는 아홉 장소를 일컫는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모두 볼 수 있다. 길은 험하지 않고, 물놀이가 허가된 것도 있다. 올해 물놀이 기간은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다.


화양동입구사거리 쪽에서 출발했는데 오래지 않아 구곡의 처음인 ‘경천벽(擎天壁)’을 만났다. ‘하늘을 떠받드는 벽’.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솟은 산세다.


괴산 화양구곡 2곡 운영담 / 사진 : 이시우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나무데크가 깔린 길은 가볍게 걷기 좋다. 계곡물과 바람 소리, 새소리가 귓가에 가득하다. 걷다 보니 강 건너 절벽에 ‘운영담(雲影潭)’이라고 쓴 한자가 선명하다. 구름의 그림자가 수면에 비친다는 뜻이다. 마침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 몇 점이 계곡물에 비쳤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은 말년에 화양구곡에 내려와 지냈다. 이곳을 사랑한 그는 ‘화양동주(華陽洞主)’라는 호로 불리기를 원했다.


화양동주가 세상을 뜬 후 제자 권상하가 이곳의 아홉 경치에 이름을 붙였다. 아홉 곳, ‘화양구곡’에는 만동묘와 암서재, 화양서원 묘정비 등 우암의 유적이 많다.


암서재 / 사진 : 괴산군청 제공


효종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우암이 매일 새벽 크게 울었다는 ‘읍궁암(泣弓巖)’은 화양구곡 가운데 3곡으로 이름을 올린다.


‘물속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금사담(金沙潭)’이 4곡이다. 금빛 모래가 물밑에서 빛나고 바위 위에는 송시열이 책 읽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암서재가 자리한다. 그 자리 위치가 절묘하다.

‘별을 관측하는 자리’라는 5곡 ‘첨성대(瞻星臺)’와 커다란 바위가 구름을 찌를 것처럼 생겼다는 6곡 ‘능운대(凌雲臺)’가 이어진다. 7곡 ‘와룡암(臥龍巖)’은 계곡물에 바짝 엎드려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 같다. 오래된 다리 건너편으로 학이 둥지를 틀고 앉아 알을 낳았다는 전설이 서린 ‘학소대(鶴巢臺)’가 8곡이다. 9곡 ‘파곶(巴串)’은 너른 바위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꿴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화양구곡 풍경 / 사진 : 이시우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풍류 여행, 함양 화림동 계곡

풍류에 일가견이 있는 선조들은 경치가 뛰어난 계곡을 좋아했다. 화림동 계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으로 칭송한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다.

화림동 계곡이 위치한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린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선비들이 학문과 인생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화림동 계곡은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계곡을 따라 기이한 바위와 반석,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명당마다 정자가 있다.

옛 선비들처럼 운치를 만끽할 수 있게 선비문화탐방로가 조성됐다. 탐방로는 2개 구간인데 1구간(약 6㎞)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7개 정자를 만나 수 있기 때문이다.


화림동 계곡과 거연정 / 사진 : 김수진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산과 물, 바위, 정자가 완벽한 합을 이루는 거연정 앞에 서는 순간, 화림동 계곡이 풍류 명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암괴석을 타고 흐르는 계곡물과 암반 위에 절묘하게 세운 정자의 조화가 기가 막힌다.

조선 시대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서원을 세우고 그 옆에 억새를 엮어 처음 거연정을 지었으며, 이후 재건과 중수를 거쳤다. 조선 후기 학자 임헌회는 「거연정기」에서 ‘영남의 승경 가운데 삼동(안의삼동)이 최고이고, 삼동의 승경 가운데 화림동이 최고이며, 화림동의 승경 가운데 이 정자가 최고’라고 썼다.

조금 지나면 군자정이 나온다.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은 처가가 있는 봉전마을을 찾으면 영귀대에서 쉬곤 했는데, 후손들이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군자정이라 이름 붙였다. 암반 위에 지은 군자정은 아담하고 소박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본격적인 계곡 산책이 시작된다. 두 정자 사이에 난 다리, 봉전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숲속으로 데크 탐방로가 보인다. 울창한 나무 그늘과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무더위를 잊게 한다. 탐방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잠시 쉴 수도 있다.


동호정에서 바라본 풍경 / 사진 : 김수진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이곳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에 이른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이 건립한 중층 누각이다. 위풍당당한 정자도 볼거리지만, 계곡에 펼쳐진 드넓은 암반이 시선을 끈다.

차일암이라 불리는 너럭바위를 중심으로 ‘금적암(琴笛岩)’과 ‘영가대(詠歌臺)’라고 새긴 글씨가 눈에 띈다. ‘악기를 연주하는 곳’,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차일암 바위에는 누워 쉬는 이도 있고, 인증 사진을 찍는 이도 있다. 반석에서 바라보는 정자도, 정자에서 바라보는 반석도 아름답다. 건너편 탐방로에서 정자와 암반이 한눈에 담긴다.

1구간 마지막 정자인 농월정에 이르니 풍경은 더욱 웅장하다. 거대한 월연암 한쪽에 농월정이 서 있고, 그 뒤로 산이 원근감을 달리하며 펼쳐진다. 몽환적인 이 장면은 드라마 ‘환혼’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화림동 계곡과 농월정 / 사진 : 김수진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신비의 숲, 부안 봉래구곡


내변산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직소보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바다와 산을 두루 품은 변산반도는 매번 새로운 자연을 발견하는 여행지다. 최근 봉래구곡의 직소폭포와 퇴적암이 층층이 쌓인 채석강을 포함한 전북서해안국가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변산반도는 서해 쪽을 외변산, 내륙 쪽을 내변산으로 구분하며, 내변산에는 봉래구곡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약 20㎞에 이르는 신비로운 하천 지형 아홉 곳을 봉래구곡이라 부른다. 상류부터 1곡 대소, 2곡 직소폭포, 3곡 분옥담, 4곡 선녀탕, 5곡 봉래곡이라 한다. 아쉽게도 6∼9곡은 1996년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물에 잠겨 볼 수 없다.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직소폭포 주변 풍경. /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봉래구곡 여행은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다. 5곡부터 1곡까지 거슬러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왕복 2시간 남짓 걸린다. 숲으로 들어서자 뜨거운 계절 속 시원한 틈새가 느껴진다. 한여름에도 나무 그늘이 깊게 드리워 청량하다.

10분쯤 지나 아담한 자생식물관찰원에 닿는다. 변산반도 곳곳에 미선나무와 꽝꽝나무,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군락이 띄엄띄엄 자리한다.

곧이어 실상사 터가 나온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 창건한 실상사는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되기 전까지 변산반도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미륵전과 삼성각만 복원되어 옛 명성에 비해 쓸쓸한 모양새다.


물고기가 또렷하게 보이는 맑은 내변산 계곡물 /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자,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리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5곡 봉래곡이 슬며시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 가운데 ‘逢萊九曲(봉래구곡)’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에 명산을 유람하며 바위에 글씨를 새긴 유학자 김석곤의 필체라고 전해진다. 내변산 물길에 반해서 ‘무릉도원 같은 상상의 산’을 뜻하는 봉래와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하천’을 의미하는 구곡을 합친 이름이라고 한다.

봉래곡에서 10여 분 더 가니 저수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부안댐이 완공되기 전, 부안 일부 지역의 식수 공급처 역할을 하던 직소보다. 보를 곁에 두고 자박자박 걷는데, 세찬 물소리가 난다.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고 전해지는 4곡 선녀탕과 분화구를 닮은 3곡 분옥담이다. 선녀들은 목욕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딜 가도 선녀가 목욕했다는 곳이 있다. 물이 맑고 영롱한 에메랄드빛이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4곡 선녀탕. /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느린 걸음이어도 출발점에서 2곡 직소폭포까지 한 시간이면 닿는다. 직소는 ‘폭포수가 바위에 걸리지 않고 폭포 아래 연못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폭포가 칼날같이 꽂힌다.

1곡 대소로 향하는 길은 봉래구곡 여정에서 가장 신비롭다. 많은 이가 직소폭포에서 발길을 돌리지만, 대소로 가는 길은 원시림 느낌이 나는 오롯한 숲길이다. 직소폭포에 비해 소담한 대소는 넓은 암반에 앉아 맑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쉬기 좋다.


3곡 분옥담의 에메랄드 물빛 / 사진 : 박산하 촬영ㆍ한국관광공사 제공


풍류란 무엇일까.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찾아가는 양반들에게 풍류는 멋이었을 게다. 그 뒤를 이고지고 따라가 부침개를 부치고 시중을 드는 ‘아랫것’들도 풍류를 느꼈을까. 그러나 이제는 뭐 어떤가. 모두가 양반인 시대이니 너도나도 풍류를 느껴보면 어떠한가.

김정석 기자 jskim@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로필 이미지
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jskim@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