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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자작자작 속삭이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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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7-17 06:04:12   폰트크기 변경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쭉쭉 뻗은 40만 그루 장관


자작나무 숲과 자작나무로 만든 움막 / 안윤수 기자 ays@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강원도 인제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머릿속에 ‘불운’과 ‘탄식’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군 복무지를 인제로 배치받았다는 건 최전방, 오지에서의 고생길이 열렸다는 선고였다. 그러나 이제 인제는 서울에서 차를 달려 1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내린천 래프팅과 박인환 문학관, 백담사, 곰배령까지 가보고 체험하고 싶은 곳이 즐비하다. 이 가운데 최근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곳이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다.

이곳은 사실 겨울 풍경이 유명하다. 하얀 자작나무 숲에 하얀 설경이 덮이면 영화 속이거나 동화 속이다. 포토존인 자작나무 인디언집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여름에는 어떨까. 하얗고 차가운 공기 대신 울창하고 꽉 찬 숲의 향기를 가슴 속에 담을 수 있다. 겨울철에 비해 사람이 적어 한적하고 고즈넉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겨울과 다른 매력이다.


자작나무숲 겨울풍경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병충해 피해 입은 소나무 대신 심은 자작나무

과거에는 자작나무숲이 아니라 소나무숲이었다고 한다. 솔잎혹파리병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자작나무를 심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70만 그루를 심어 지금의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만들어졌다. 인공조림숲이다.

안내소에서 조금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별바라기숲 코스로, 왼쪽은 달맞이숲 코스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처음에는 약간 가파르다가 평평한 구간을 만나게 된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있는 넓은 길이라 천천히 걸어 오를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린다. 땡볕이 내리쬐는 구간이 많다는 게 단점이다.

왼쪽 길을 택했다면 포장되지 않은 넓은 길로 가다가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등산과 다름없는 가파른 길도 제법 있다. 걸리는 시간도 한시간 반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대신 그늘이 많고 숲내음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별바라기숲 코스로 올라가기로 했다. 햇살 내리쬐는 길 곳곳에 어린 자작나무가 심어진 걸 보면 자작나무 심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는듯 싶다. 어린나무들이 다 자라면 그늘을 드리워주지 않을까. 자작나무숲을 만나기 전까지 길이 조금 밋밋해서 그런지 오르는 길 곳곳에 뭔가를 만드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오르는 길 곳곳에서 또 다른 길로 빠지는 코스들을 마주치게 된다. △치유 △탐험 △위험 △힐링 △하드 △숏 코스로 이름 붙여졌다. 역시 자작나무숲과 천연림, 낙엽송, 작은 계곡 등 코스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한 길들을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았지만, 첫 방문이니 다음을 기약했다.


자작나무숲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여름에도 장관…속삭이는 숲

여정을 거쳐 드디어 만나게 되는 자작나무숲은 여름에도 장관이다. 땀 흘리며 오른 수고를 잊게 한다. 촘촘히 심어진 자작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안내판에는 20∼30년생 자작나무 41만 그루가 밀집해 있다고 적혀 있다.

파란 하늘로 향하는 하얀 나무 기둥들은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영화 속, 만화 속이라는 게 좀더 가까울 듯하다.

처음에는 탄성이 나오고 벤치에 앉아 보고 있자면 나무와 눈이 마주친다. 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한다는데, 숲이 내게 자작자작 속삭이는 듯도 싶다. 사람이 많지 않아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일 수도 있다.


자작나무숲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코스 끝에는 정자 형태의 숲속교실과 미끈한 자작나무로 만든 앉을 곳, 초입에서 봤던 자작나무 인디언집이 하나 더 있다. 전망대도 있다.

어린이들의 숲체험 활동과 숲에 대한 수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올라오는 길이 예전에는 흙길이었는데 포장이 돼서 아쉽다는 이들도 있는데 아마도 어린이 체험 때문에 길을 포장한 것 같다.

아름다운 숲으로 알려지면서 2012년 ‘1박2일’을 시작으로 2019년 ‘킹덤 시즌2’까지 이곳에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 촬영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유가 끄덕여진다.

△화난 표정 품은 자작나무

자작나무마다 새겨진 화난 얼굴 표정 같은 무늬도 흥미롭다. 밤에 보면 무서울까. 자작자작 속삭이는 게 아니라 투덜투덜 불평을 쏟아내는 것 같기도 하다.


자작나무 껍질에 있는 모양이 성난 표정 같다.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표정에도 사연이 있다. 나무가 쭉쭉 자라다보니 햇볕을 받지 못한 밑부분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라고 한다. 상처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불평을 할만하다.

안내판을 하나 만났는데 ‘숲이 아파요’다. 자작나무 껍질을 벗기거나 껍질 위에 낙서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 TT

자작나무 껍질은 하얗고 얇게 벗겨져 옛사람들은 여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썼다. 신라 천마도가 자작나무에 그려졌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 일부가 자작나무로 알려졌다. 껍질에 유분이 많아 보존이 오래된다. 자작자작 타는 소리를 내는 이유도 유분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자작나무 수액을 마시기도 하는데 핀란드 자일리톨이 여기서 채취된다고 한다. 약재로도 쓰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작나무 껍질은 사람들에게 공격받는다. 화난 표정의 또 다른 이유다.



△인공시설 최소화한 달맞이숲 코스

같은 길로 내려가려다 반대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물어 달맞이숲 코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존 안내판에 매직으로 코스를 그려놓은 걸로 봐서 처음부터 있던 길은 아닌듯 싶다.

알아보니 역시나 작년에 만든 길이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길과 숲 훼손이 늘자 인원 분산을 위해 새로 조성한 길이다. 인공 시설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마트폰이 안 터지는 구간이 꽤 있다. 그럴 땐 배터리가 빨리 소진된다. 참고하자.

내려가는 길에도 자작나무숲이 이어진다. 조금 가다 보면 자작나무는 잦아드는데 풍부한 숲내음은 여전히 남아 가슴 깊이 들어온다. 기분이 좋다.


자작나무숲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다시 길을 가자면 조금 가파른 구간을 만난다. 요새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걱정이다. ‘이 길로 올라왔다면 힘들었겠네’라는 생각도 든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험한 코스는 아닌 정도다. 그러나 올라왔던 길이 샌들을 신고도 충분하다면, 이 길은 등산화가 필요하다.

다 내려왔다 싶었는데 다시 길이 이어진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는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여정을 마치고 겨울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모습이 궁금하다. 초입에는 민박집도 있으니 며칠 머물며 못 가본 나머지 코스들도 두루두루 둘러볼까하는 생각도 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산이 가능하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후 2시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다. 휴무일이 연휴 등과 겹치면 운영하고, 폭설 등에는 출입이 통제되니 가기 전 확인하는 게 좋다. 여름에는 양산, 겨울에는 아이젠이 필수다.


사람들은 소나무가 떠난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었다. 촘촘히 심은 자작나무는 이제 큰 숲이 됐다. 그 숲에 상처를 입히고 훼손하는 것도 사람이다. 숲은 우리에게 ‘자작자작’ 속삭이고 있을까. 아니면 성난 얼굴로 ‘투덜투덜’ 대고 있을까.


자작나무숲 / 사진 : 안윤수 기자 ays@


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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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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