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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고부가가치산업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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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02 06:20:34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백경민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 특혜를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며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했다. 설계와 감리 할 것 없이 LH 전관인사가 재직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며 사고를 자초했다는 주장이다. 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이같은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가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LH 아파트 명단 15곳을 공개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LH 전관을 거느린 업체로 드러났다.

비단 LH만의 문제일까. 철도, 도로, 항만 등 대부분 분야에서 전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관을 영입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수억원에 달하는 연봉에, 전용 차량은 기본, 많게는 500만원 수준의 활동비가 별도로 지급된다는 후문이다.

기업은 바보가 아니다. 그 많은 돈을 들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업을 따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가 분석한 상위권 업체들의 지난해 종합심사낙찰제 수주율(국토청, 도로공사, 철도공단, LH 발주사업 기준)은 무려 98%였다. 이들 업체 대다수가 20명 안팎의 전관을 보유한 곳들이다. 종심제 사업이 발주되면 각 사 전관들이 한데 모여 공구별 가져갈 물량을 배분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온다. 수십억짜리 사업이 전관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실무 기술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발주기관 출신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일을 해도 받기 힘든 수준의 연봉을 가져가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E&E포럼(Engineering & Engineers Forum)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기술인 10명 중 8명은 임금 등 처우가 나빠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로 꼽았지만, 전관들의 처우는 갈수록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기술인들 사이에서는 건설엔지니어링에 따라 붙는 고부가가치산업이란 수식어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관이 좌지우지하는 구조로는 기술력 경쟁은커녕 안전 및 품질 확보도 언감생심이란 설명이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기술인들이 우대 받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를 끊어내지 않고서 미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다.


백경민 기자 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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