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 입학에서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이 불굴의 도전, 축적된 기술,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에 근거한 잘못된 결론을 내려 왔다”고 지적했다. 요지는 ‘선의의 차별’도 어쨌든 ‘차별’이라는 것이다.
건설산업은 ‘선의의 차별’이 가장 난무하는 곳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우대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기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외청인 중소기업청을 격상시켜 중소벤처기업부를 탄생시켰다. 당시 청와대 차원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중기부의 권한은 막강해졌다.‘약자 보호’라는 기치를 내건 중기부의 거센 입김에 기획재정부조차 형평성 논리를 펴지 못했을 정도다.
그렇게 중소기업 약자 프레임에 갇힌 대표적인 공기업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다. 중기부는 3년마다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을 지정해 공공기관에 의무 구매를 강요한다. 대표 구매 품목이 연간 11조원 규모의 레미콘이다. 레미콘은 632개 대상 품목 중 구매 비중으로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 산업이지만, ‘약자’ 프레임으로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다. 중기 간 경쟁제품 품목 지정은 중소기업중앙회의 건의로 이뤄지는데, 중앙회에서 가장 입김이 센 단체가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란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광주 화정동이나 인천 검단 사태 모두 건설업계에서는 정부가 중기 레미콘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으로 본다”고 전했다.
인천 검단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로 건설사는 전면 재시공으로 책임을 졌다. 법적인 의무의 범위를 넘어, 국토부 장관의 강경한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사고 구간에 불량 레미콘을 납품한 지역 6개 레미콘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사고 다음날에도 정상적으로 영업했다. 관급계약 기간을 보호받아 지금도 LH 현장에 신규 계약을 수주하고 있다. 광주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약자’에게는 아무도 제품 불량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철근 누락은 잡아내기 쉽다. 하지만 레미콘 강도 저하는 웬만해서는 밝혀내기 어렵다. 타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올라가는 콘크리트의 물성 탓이다. 그런데도 타설 8개월이 지난 사고 현장의 콘크리트 강도가 법적 기준의 70%에 미달했다면 국토부 차원의 중기 레미콘사 대상 전수 조사가 있을 법도 한데 감감 무소식이다. 심지어 국토부가 불량 골재 사용을 지적한 인천 레미콘사도 여전히 정상 영업 중이다.
LH 부시실공 논란으로 고개까지 숙인 국토부 장관께 고언을 드린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건설현장에 난무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보셔야 할 때다. 지금 건설현장에서는 ‘선의의 차별’이 ‘고의적 불량’을 양산하고 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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