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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로 승화한 여성의 서사…‘3인3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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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16 17:22:19   폰트크기 변경      
화인페이퍼갤러리서 27일까지 여성작가 민경ㆍ서정배ㆍ황지현 작품전

민경의 ‘책을 읽다 만 선우’ /사진: 화인페이퍼갤러리 제공


여자 아이가 거실 소파에서 머리에 이상한 물건을 두르고 앉아 있다. 생소한 오브제를 조합해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 장면에서 묘한 피곤함이 새어 나온다. 한창 뛰어놀 아이인데도 삶의 육중한 무게감이 끊임없이 머리를 짓누르고, 얼굴을 조이는 것 같다. 시간은 뒷걸음질 치고, 공간은 힘차게 달려온다. 오브제를 직접 만들어 사람에게 씌운 뒤 이를 카메라 렌즈로 잡아내는 민경의 대표작 ‘책을 읽다 만 선우’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 은유적 감성을 덧입힌 작품이다.


민경을 비롯해 서정배, 황지현 등 젊은 여성작가 세 명이 참여한 ‘언퍼밀리어(unfamiliar), 모놀로그(monologue). 룸(room)’전이 서울 연남동 화인페이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여성의 삶과 고민 그리고 의지’라는 부제와 함께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이들이 10여점 씩 모두 35점을 내놓았다.


민경의 사진과 조각 (언퍼밀리어), 서정배의 영상과 회화 (모놀로그), 황지현의 그림(룸)들을 고루 배치해 전시장을 ‘이질적인 독백의 방’을 꾸민 게 이채롭다. 메이킹 포도작업부터 초현실적 그림, 애니메이션, 영상,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개성적인 미학이 돋보이는 이들의 작품 경향을 통해 최근 MZ세대 작가들의 다양한 프리즘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과 조각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민경은 감각적 카메라 셔터의 손놀림과 3차원 조형예술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여성의 의식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초기에는 형태와 구도의 균형을 모색하면서 인간 내면에 역점을 뒀다. 최근에는 메이킹 포토 작업으로 사실성을 장악하면서 마음 속의 움직임까지 찍어내 한국 시각예술에 새롭게 부각된 ‘사진의 메티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격정적인 손놀림에서 우러난 이미지들은 감각적이면서도 리듬감이 살아 있다. 오브제를 미묘하게 되살려낸 조각에서는 미묘한 여운과 시간성이 느껴진다. 작가는 “사적공간이 의미하는 일상성과 여성이 경험하는 감정적 드라마, 제스처가 부딪히며 창출되는 ‘창조적 서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라며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보다는 사소한 상태가 발생하는 순간,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찰나의 미학을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황지현의 ‘Her own room’ /사진: 화인페이퍼갤러리 제공

여성으로서 경험과 향유, 충돌 상황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황지현은 점진적인 색채의 변화로 회화의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무한히 확장된 공간을 추구한다. 자연스럽게 감응하거나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순간을 낚아채 회화나 드로잉, 벽화 형태로 시각화한다. 여성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놓치기 쉬운 감각과 감정들을 화려한 색채로 버무려 관람객들의 시선을 유도한 게 유별나다. 동덕여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작가는 “붕괴되고 와해되는 집, 벽을 뚫고 뻗어나가는 식물과 인체, 자궁과 꽃의 혼합, 캔버스를 벗어나 벽으로 이어지는 길의 형상은 견고한 체제와 사회적 틀을 깨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다각적 측면에서 바라본 여성상의 탐색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면서 ‘색채의 힘’을 보여준다.


서정배의 ‘초현실적인 여름’ /사진: 화인페이퍼갤러리 제공


건국대 미대를 나와 파리1대학에서 석ㆍ박사과정을 거친 서정배는 영상과 회화를 통해 여성의 삶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고독을 상징하는 상황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묘사한다. 어린시절 경험한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을 무표제 음악처럼 풀어내 다소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자재의 경지에서 형이상학적인 ‘색과 선의 왈츠’를 빚어낸다. 그의 그림엔 어김없이 자신이 창조한 소녀 모습의 캐릭터 ‘키키’가 등장한다. 키키는 다양한 차림과 표정과 동작으로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2021년 여름에 시작해 최근 완성한 회화와 드로잉은 물론 애니메이션 작품을 함께 내놓았다. 작가는 “키키와 내 이야기로 불안과 우울, 외로움, 고독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는 이미지(image)로 그려낸 독백(monologue)”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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