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전관 카르텔 혁파’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작년 건설노조를 대상으로 한 ‘건폭’ 척결책에 이은 건설부문의 또다른 대수술이다. 수주산업 특성상 갑을관계와 부조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건설산업에 미칠 후폭풍은 앞선 건폭 대책에 버금갈 전망이다. 수십 년간 문제의식을 품고도 카르텔 구조 내의 비즈니스에 순응해야 했던 건설인들로선 환영할 만한 조치다. 먹거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장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바뀔 것이란 기대에서다.
타깃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전관들, 속칭 ‘엘피아’다. 철피아, 도로마피아 등을 포괄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의지다. LH도 퇴직자들이 포진한 전관업체와의 신규 용역계약은 물론 기존 계약까지 백지화하겠다는 초강수를 내놓았다. 위헌 소지가 높지만 ‘사면초가’에 몰린 LH로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특단책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르텔 혁파가 가능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엘피아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카르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탓이다. 인터넷백과사전 ‘나무위키’에서 ‘관피아’를 치면 모피아(기획재정부), 세피아(국세청), 법피아(사법부), 교피아(교육부), 원피아(산업통상자원부), 해피아(해양수산부ㆍ해경), 산피아(산림청), 조피아(조달청), 팜피아(보건복지부ㆍ식약청), 메피아(서울도시철도), 건피아(국토교통부) 등이 줄줄이 쏟아진다. 하나같이 엘피아보다 윗선인 정부부처 퇴직자 카르텔이다.
순위로 세우면 법피아, 모피아가 최상단이고 그 위에 정피아(정치권)가 있다. 엘피아는 철피아(국가철도공단ㆍ코레일), 도로마피아(한국도로공사) 등과 함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비유하면 중간 위치다. 국민 보금자리의 안전과 품질을 책임지는 업무 특성상 반드시 수술할 부위임은 틀림없지만 부실공사와 인명사고를 근절하는 효과를 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전관 카르텔이 문제가 된 것은 유착으로 설계ㆍ감리ㆍ공사를 따내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다. 전관 유무가 아니라 해당 기업의 양심과 책임감에 달린 셈이다.
전관들이 싸잡아 부실공사의 죄인으로 몰리는 상황도, 이들을 내치는 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건설산업계에서 만난 전관 출신 인사들 가운데는 탁월한 경영능력과 통찰력으로 기관이나 기업을 반석 위에 올린 이들도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앙정부, 지자체 등 인허가권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경실련은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만들고 정부, 지자체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제안처럼 최상단의 관피아 카르텔부터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게 최선책이지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토부와 LH가 명운을 걸고 대책을 마련 중인 만큼, 전관과 현직자 간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고 부실 전관업체를 퇴출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다만 지방 각지에서 박봉에 고군분투하는 공직자, 공기업 임직원에 대한 작은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과거에는 공직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만으로도 일했지만 지금은 이를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공직자와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한 싱가포르의 건설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인 이유부터 짚어봐야 한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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