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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늙어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가 등장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88% 이상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대한민국 노인의 대다수가 도시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일부, 도심 또는 도시 근교 시니어타운의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냈고 앞으로도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는 ‘도시형 노인’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익숙한 환경에 대한 애착이 크므로, 자신이 오랫동안 누려온 일상과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계속 거주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에 대한 수요는 오늘날 ‘도시형 노인’의 등장 배경과 함께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의학기술 발달과 영양상태 개선으로 인한 기대수명 증가, 노인의 인터넷 및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은 단순히 부양의 대상으로서 수동적인 노인이 아닌,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적극적인 주체로서 노인의 등장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의 늘어난 기대수명이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화(active ageing)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의 적극적인 고령사회 대응이 필요하다. 이미 도시인구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점차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도시형 노인’들이 최대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경제활동과 사회적 교류를 지속하도록 하는 것은 노인부양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노인의 신체적 능력과 사회적 수요의 변화를 고려한 지역사회 단위의 도시공간 재편과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개인의 거주 공간인 집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고령사회로의 변화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의 특성과 수요에 맞춘 다양한 형태의 주거모델 개발 및 공급과 함께 기존 주택 내에서 노인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편안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연령, 성별, 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을 위한 환경 디자인) 기반의 주택 개·보수 지원과 같은 주거복지 정책이 요구된다.
동시에 노인들이 건강한 사회적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보행 임계거리 내에서 의료, 요양, 돌봄 등의 생활지원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이는 걸음과 반응속도가 느린 노인 보행자들이 보행 생활권 내에서 안전하게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로의 보행 신호주기를 늘리고, 보도 턱을 낮추는 등 공공환경의 물리적 정비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다.
보행권 내에 잘 갖춰진 도시공원은 이동성에 한계가 있는 노인들이 신체활동을 촉진함으로써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고령사회 대응의 일환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적, 사회적인 취약성은 증가하지만, 지역사회 단위의 ‘적절한 도움’을 통해 기존의 일상을 계속하며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적절한 도움’의 관점에서 도시공간을 바꾸는 것은 단지 노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닌, 결국은 모든 세대를 위한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다. 특히 도시공간의 변화에 대한 오늘의 결정이 실제 변화로 나타나는 데는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수혜 대상은 미래의 우리가 될 수 있다.
20세기의 명작,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는 노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존엄성이 실현되는 배경이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그들의 삶의 배경인 도시에서 인간다움을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가? 고령화 속도에 비해 현재 우리의 고령 친화적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도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밀도와 이로 인한 경제성을 보장하므로 노인의 새로운 수요에 맞춘 물리적 시설과 서비스의 공급을 실험해보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 고령화는 이미 현실이다.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도시형 노인’을 위한 성숙한 고령 친화적 사회로 변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도시의 모습을 기대한다.
이나래 유엔해비타트한국위원회 지속가능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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