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이 부진에 빠졌다. 왠만하면 이기던 팀이 요즘엔 왠만하면 진다. 경기 초반에 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고, 지고 있으면 반드시 질 것 같다. TV중계 보기가 겁난다.
‘WAR’ 점수가 6∼7점에 달하던 최정상급 선수들이 혹은 메이저리그로, 다른 팀으로, 혹은 부상으로 줄줄이 이탈하면서 팀 동력을 잃은 탓이다. 최하위권을 맴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활의 활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다.
뜬금없지만, 오늘은 야구에서 쓰는 ‘WAR’이란 지표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로 해석되는데, 야구선수의 기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현대적 지표로 통한다.
원래 야구에서 타자는 타율ㆍ타점ㆍ홈런, 투수는 다승ㆍ방어율ㆍ삼진이 전통적인 평가 지표였다. 하지만 출루율, 주루능력, 수비력 같은 역량도 팀 승리에 긴요하게 작용한다. 결정적 순간에서의 활약상도 중요하다. 10대 0으로 이기고 있을 때 날리는 만루홈런보다 끝내기 단타가 훨씬 소중하다. WAR은 이런 요소까지 모두 반영하는 종합지표다.
이 점수만 보면 어느 선수의 총체적 역량과 가치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WAR이 6점대라면 국가대표급이고, 7점대라면 MVP급이다. 며칠 전에는 메이저리그의 대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WAR 10점이라는 기적적인 점수에 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건설산업에도 야구의 WAR 같은 지표가 하나 있다. ‘시공능력평가액’이 그것이다.
시공능력평가액(이하 시평)은 어느 건설사의 종합적인 역량을 숫자로 표시한다. 토목과 건축, 산업환경설비 등 공종별 공사 실적은 물론이고 경영상태, 기술력 등을 평가해 금액으로 환산하고 합산한다. 그렇게 올해는 모두 7만7000여 개 종합ㆍ전문ㆍ기계설비 건설사를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시평액과 순위만 보면, 어떤 건설사가 얼마나 경험과 기술력을 갖췄는지, 재무적으로 안정됐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 공공ㆍ민간 발주자에게 훌륭한 지표가 된다.
WAR과 시평은 계산이 너무 복잡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시평에는 ‘시공능력’으로 보기 애매한 요소들도 다수 반영된다. 전체 시평액의 7%쯤을 차지하는 ‘신인도’ 점수에는 어느 건설사가 사회공헌을 얼마나 했는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충실한지, 최근에 직원을 얼마나 고용했는지까지 반영된다.
심지어 지난주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내년 시평제도 개선안에는 △중대재해로 최고경영자가 유죄 선고를 받으면 실적평가액의 10%를 감점 △하자보수 시정명령을 받으면 횟수만큼 4%씩 감점 △해외건설 인력을 고용하면 숫자만큼 3∼5% 가점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신고해 포상금을 받으면 횟수만큼 4% 가점 등등의 내용도 담겼다.
재해ㆍ안전이나 고용 같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계산법에 건설업체들이 질릴 법도 하다. 그때 그때 정책적 필요에 따라 가점과 감점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마구 써먹다보니 갈수록 시평액 자체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같다. 정책적 필요는 입찰제도에 맡기고 시평제도 자체는 일관성 있는 종합 건설사 평가지표로 남겨두면 안 될까. WAR처럼 말이다.
신정운 건설산업부장 peace@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