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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방폐물관리법안, ‘부지내 저장시설 용량’, ‘사용후핵연료 이전시점 명시 여부’ 막판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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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05 08:03:21   폰트크기 변경      
여야 간 원전정책 입장차 깔려 있어 임기 내 합의안 도출 미지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부회장인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지난 6월 21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인선, 김영식 의원 등이 참석한 고준위방사선폐기물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준위방폐물관리법안’을 놓고 여야가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의 저장용량,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시설로 이전 시점 명시 여부 등을 놓고 막판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정책과 윤석열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정책 간의 노선차가 깔려 있어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21일 국회 산자중기위 법안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부지 내 저장시설 저장용량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설계수명 기간’을, 국민의힘은 ‘운영허가 기간’을 각각 주장하며 맞섰다. 정부는 여당 입장을 지지했다. 이런 차이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법안 내용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 2021년 9월 발의된 민주당 김성환 의원 법안과 2022년 8월 발의된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법안은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의도에서는 동일하다.


이들 법안은 ‘부지 내 저장시설’을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 또는 처분하기 전까지 해당 원전 부지 내에서 저장하는 시설’로 정의한 뒤 ‘부지 내 저장시설을 설치 또는 운영하려는 자는 주변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주민의 요구가 있으면 공청회 등을 개최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지역주민 의견 수렴’을 중시한 점은 3개 법안이 모두 같다. 이는 부지 내 저장시설 설치를 놓고 현지에선 갈등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부의 ‘습식저장시설’에 일정기간 머문 뒤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저장된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습식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기 전에 부지 밖 ‘중간저장시설’로 이전돼야 하나 중간저장시설 건설이 지연되자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에 임시적으로 저장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가 다량 배출되는 중수로가 가동 중인 경주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사일로→맥스터)이 선례가 됐다. 하지만 월성원전도 2020년 7월 맥스터 증설을 둘러싸고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극심한 반대로 1년 이상 사업추진이 지연되기도 했다.

법안의 쟁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김성환 의원 법안은 ‘저장용량’에 대해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해선 안된다’고 규정했다. 반면 김영식·이인선 의원안은 ‘운영허가를 받은 기간 동안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예측량을 초과해선 안된다’라고 했다. 야당은 설계수명(통상 30년) 내에 발생할 사용후핵연료를 저장용량으로 제시한 데 비해 여당은 설계수명 외에 ‘계속운전’ 기간까지 감안해 저장 용량을 정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영순 의원은 법안심사에서 “원전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허가된 설계기간으로 한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같은 당 김성환 의원안을 지지했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 강경성 제2차관은 “설계수명으로 했을 경우에는 (원안위) 허가 받아서 계속 운전하는 것 자체가 배제된 뜻이 된다. 정부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현행 원자력안전법에도 설계수명 이후에 계속 운전을 하고자 하는 자는 원안위 허가를 받아 할 수 있도록 열어 놨다. 현행법에 열려 있는 것을 이쪽에서 설계수명으로 한정하면 법 간에도 안 맞다”고 지적했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는 민주당 입장을 감안, ‘고준위방폐물관리위원회는 기술발전 또는 안전성에 관한 여건 변화 등이 있을 경우 저장용량을 달리할 수 있다’ 는 단서 조항을 둔다면 김성환 의원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회재 의원은 “눈 가리고 아웅이지. 완전히 재량권을 부여받은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여건 변화 있었다고 판단해 용량 늘려 버리면 그만이지 않나”라며 절충안을 평가절하했다.

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김 차관을 향해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해선 안된다’ 이렇게만 명시했을 때 이것은 감원전·탈원전 하자는 얘기다”면서 우회적으로 민주당 안을 비판했다.

부지 내 저장시설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시설(중간저장시설, 처분시설 등)로 이전 시점을 명시하는 문제에서도 여야가 충돌했다. 김성환 의원안은 ‘부지내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관리시설이 완공된 후 지체 없이 관리시설로 이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전 시기에 대해 ‘지체 없이’란 표현이 전부다.

그에 비해 김영식 의원안은 ‘부지내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2043년부터 중간저장시설로 이전하며, 2050년부터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시설로 이전한다’라고 시기를 명문화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관리시설 부지를 2035년 이내에 확보하고, 중간저장시설을 2043년, 처분시설을 2050년에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관리시설 관련 시점도 못박았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부지내저장시설이 중간저장시설이다’는 관점에서 시점 명시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김성환 의원은 “제가 여러 전문가들에게 (경주의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는 어디에 해당되는 시설이냐라고 했더니 맥스터도 엄밀하게 보면 중간저장시설이라는 것이다”고 전언했다. 중간저장시설이 부지내 건식저장시설의 형태로 이미 건설돼 사용후핵연료가 이전됐기 때문에 법안에 이전시기를 명문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김성환 의원은 이어 “그러면 왜 법원 판결이 ‘중간시설이 아니다’고 났느냐면 중간저장시설이라고 하는 순간 경주 특별법과 충돌하는 거다”면서 “경주 특별법에는 중저준위를 저장하는 시설로 하되 경주에는 영구폐기장과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환 의원이 언급한 경주 특별법은 ‘중저준위방폐물처분시설유치지역지원특별법’으로 ‘사용후핵연료의 관련 시설은 (중저준위방폐물) 유치지역에 건설해선 안된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강 차관은 “부지내저장시설은 원자력안전법 제2조에 따라 ‘관계시설’로 규정하고 있고, 중간저장시설은 원자력안전법 및 동법 시행령에 별도의 규정이 있어 이 두 개는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반론을 편 뒤 “정부 입장은 부지내저장시설 운영의 장기화를 우려하는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해 중간저장시설의 확보 목표 시점도 별도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김영식 의원안을 지지했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에 대해 ‘핵분열시킨 핵연료물질을 발생자로부터 (관리사업자가) 인수해 처리 또는 영구처분하기 전까지 일정 기간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현재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에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는 관리사업자에게 인수되기 전 단계에 있다. 때문에 법원도 월성 맥스터 인허가 무효확인소송에서 1·2심 모두 ‘부지내저장시설인 맥스터는 원자로 관계시설이며 중간저장시설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김 차관은 “지난 8월 16일 지역 주민들과 거친 심층 토론회에서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의 조속한 반출을 위해 중간저장시설 목표 시점 명시를 요구한 바 있다”면서 재차 김영식 의원안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쟁점 조항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현 정부의 원전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회재 의원은 “저희들은 현 정부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 확대정책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용량을) ‘설계수명 기간 동안’으로 제한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성환 의원도 “엎질러진 물이라 한국에 원전을 지어 놓은 이상 고준위 영구 폐기장을 짓긴 지어야 되지만 이 정부가 원전을 계속 확대하려고 하는 이 상황에서 이 법 처리하는 게 곤란하다는 얘기를 명확히 한 바 있다”고 상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고준위방폐물 관리를 위한 법안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사업의 구체적인 절차를 명시함으로써 정부가 국민에게 절차를 알리고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서 “야당 의원 법안은 내용적으로 이 법을 이용해 원전의 계속운전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법안이 갖는 절차법 취지를 위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위 법안소위는 고준위방폐물법안을 2011년 11월 처음 상정해 축조심사를 시작한 뒤 올 8월21일까지 7차례 심사를 벌였다. 하지만 일부 민감한 쟁점에 대해선 여야 입장이 원전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차와 맞물려 장기간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21대 국회 남은 기간 동안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고준위방폐물관리법안’, 뭘 담고 있나?


21대 국회에서 고준위방폐물 관리를 위해 상정된 법안은 제정안 3건으로 모두 ‘영구처분’을 목표로 ‘부지 확보’ 방안을 담고 있다. ‘재처리’는 이론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독성과 부피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한미원자력협정을 의식해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고준위방폐물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인 2016년 11월 박근혜정부에서 정부안으로 처음 제출됐다. 이후 의원법안도 3건 추가 발의됐지만 상임위조차 통과 못하고 2020년 5월 임기 만료에 맞춰 모두 폐기됐다. 박근혜정부 법안이 원전지역, 시민사회, 원자력계 등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의 약 20개월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련된 권고안(2015년 6월)을 근거로 제출된 것이었지만 문재인정권이 들어서면서 제동이 걸린 셈이다. 권고안 마련 과정에서 ‘의견수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019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발족된 뒤 23개월간의 공론화 끝에 2021년 4월 대정부 권고안이 다시 발표됐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 9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김성환 의원 법안이 발의됐고,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는 2022년 8월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법안이 발의됐다.

이들 3개 법안의 핵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공통적으로 고준위 방폐물 정책을 전담하는 기구 신설을 담고 있다. 현행 법(방폐물관리법,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유치지역지원특별법 등) 체계에선 방폐물 관리업무는 고준위든, 중저준위든 모두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고 있다.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의 독립적 행정위원회인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를 신설해 관리 계획 수립, 관리시설 부지 선정, 유치지역 지원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고준위는 관리위원회가, 중저준위는 산업부가 담당하고 구조로 이원화하는 셈이다.

법안은 또 현행 법체계에서 유형에 대한 규정이 없는 ‘관리시설’에 대해 ‘중간저장시설’, ‘처분시설’ 등으로 구분했다. 중간저장시설은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하기 전까지 저장하기 위한 시설로서, 부지 내 저장시설은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처분시설은 ‘중간저장시설로부터 인수·운반한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했다. ‘처분’에 대해선 현행 방폐물관리법에 ‘고준위 방폐물을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것’이라고 정의돼 있다.

법안은 관리시설의 부지선정 절차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부지조사 계획 수립→기초지자체의 부지조사 신청 →부지조사 실시 →주민투표의 순서로 진행하되, 각 단계에서 의견 수렴을 충분히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현행 ‘중저준위 방폐물처분시설 유치지역지원법’에선 유치지역 선정을 위해 ‘주민투표’와 ‘지역 주민 설명회 또는 토론회’를 각각 실시하도록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은 기초지자체의 부지조사 신청 전에 먼저 지역주민의 의견확인, 지방의회의 동의, 인접 지자체와의 협의 등을 거치도록 하고, 주민투표는 부지조사 이후 최종 단계에서 실시토록 선후를 분명히했다.


권혁식 기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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