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가난한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네기 멜론대를 나와 뉴욕에서 상업 디자이너로 성공한 그는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여 ‘팝아트’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 1963년 뉴욕에 작업실 ‘팩토리(Factory)’를 세우고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예술계 전반에 걸쳐 혁명과 변화를 주도했다. 그림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상품 형태의 실크 스크린 작품을 쏟아내 미술품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1962년 발생한 대형 비행기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아 시작한 ‘죽음과 재난’ 시리즈는 현대사회에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비극적인 사고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1963년에 완성한 ‘실버 카 크래시’는 자동차 충돌 직후 망가진 차 내부에 방치된 뭉개진 시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한쪽엔 화려한 실버 스크린을 배치했다. 이 그림은 2013년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1억500만 달러(약 1400억 원)에 팔려 워홀의 경매 최고가 신기록을 세웠다.
‘팝아트의 전설’이란 아이콘을 만들어낸 워홀의 희귀작이 모처럼 국내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옥션이 오는 26일 오후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여는 기획경매 ‘컨템포러리 세일’에는 워홀의 작품을 비롯해 데이비드 호크니, 이우환, 김환기, 장욱진 등 국내외 유명미술가들의 작품 61점이 경매에 쏟아져 나온다. 추정가 총액은 약 65억 원이다.
앤디 워홀의 ‘달러사인’ /사진: 서울옥션 제공 |
경매 출품작 중에는 단연 앤디 워홀의 1981년작 ‘달러 사인(Dollar Sign)’이 돋보인다. 예술과 상업의 관계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녹아있는 대표작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배금주의적 속성을 고발한 ‘달러’ 시리즈는 1960년대 초에 처음 등장했다. 초기에는 1달러 화폐를 이미지로 사용하다가 1981년에는 모든 지폐를 활용해 화려한 자본주의 겉모습 뒤에 숨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은유했다. 서울옥션이 야심차게 ‘얼굴 작품’으로 내놓은 이번 작품의 추정가는 6억~10억 원이다.
리처드 페티본의 ‘캠벨 스프 캔’ /사진: 서울옥션 제공 |
워홀의 대표적 소재인 ‘캠벨 수프 캔’을 차용해 그린 미국화가 리처드 페티본의 작품도 출품했다. ‘도용 미술(Appropriation Art)’의 개척자 페티본은 ‘팝아트의 복제’라는 또 다른 화두를 던지며 국제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아티스트다. 1962년 앤디 워홀의 개인전에서 팝아트를 처음 접한 페티본은 유명 배우나 가수 등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용한 워홀의 작품을 작은 포켓 크기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차용과 복제’에서 더 나아간 ‘재차용과 재복제’를 통해 예술품은 유일무이한 원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과감하게 보여줬다.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페티본의 ‘캠벨 수프 캔’ 작품은 추정가는 4000만~8000만 원이다.
‘살아있는 현대미술의 전설’ 데이비드 호크니의 드로잉 작품도 경매한다. 추정가 1억7000만~3억 원이 매겨진 호크니의 아이패드 에디션은 영국 동요크셔의 풍광을 담아낸 이색 작품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새로운 매체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의 열정과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도 대거 경매에 부쳐진다. 1984년 제작된 이우환의 ‘무제’는 무표제 음악처럼 해체적이고 자유로운 리듬이 배어있다. 1970~1980년대 ‘점’, ‘선’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엄격한 질서와 통제를 벗어나 해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양상을 표현한 게 특징이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 이전 색면에 대한 탐구를 볼 수 있는 추상화 ‘18-Ⅷ-69 #106’, 단풍으로 물든 산과 나무를 화폭에 담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유영국의 작품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새 주인을 찾는다.
장욱진의 ‘싸립문’ /사진: 서울옥션 제공 |
최근 국내외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도 줄줄이 입찰대에 오른다. 지난 13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시작한 장욱진의 작품 ‘싸리문’이 눈에 띤다. 용인에 거주하던 시기에 수안보 집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사람과 동물, 자연이 적절히 구성된 화면에는 충만함과 허함, 유한과 무한이 공존하는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소개되고 있는 김구림, 이강소, 서승원 등 실험미술 작가들의 캔버스 작품,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유작전을 펼치고 있는 최욱경의 추상화 작품 또한 경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출품작은 경매 당일 26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 5층과 6층에서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프리뷰 전시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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