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대경칼럼]짧아지는 기업수명, 그것도 기업하기 나름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3-10-04 07:44:34   폰트크기 변경      

 영생(永生)은 인간의 오랜 꿈이다. 인간은 영생을 꿈꾸며 미라를 만들었고 불로초를 찾기도 했다. 그래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수명 연장에는 성공했다. 고대 인간의 수명은 38세였다. 지금은 한계수명이 120세다. 의료기술의 발달이 이룬 성과다. 인간이 창업한 기업도 영생을 꿈꾸기는 마찬가지다. 창업하는 기업마다 백년, 천년기업을 외친다. 하지만 영생은 고사하고 인간처럼 수명 연장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을 예측한 한 보고서가 흥미롭다. 한국무역협회가 몇해전 내놓은 ‘기업 벤처링 경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인데,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8년 기준 61년에서 오는 2027년 12년 수준으로 대폭 줄 것이라고 한다. 기업이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서란다.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기업의 수명을 줄이는 요인이 된 것이다. 지금 디지털로 상징되는 기술의 발달은 결국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변화의 동력은 기술뿐 아니라 경기가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정책과 제도가 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 건설공사계약액이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3.8% 줄었다. 작년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감소한 것이다. 건설경기 변화는 건설사들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 키스콘(KISCO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793개 건설사가 폐업신고를 했다. 하루 10개 가까운 건설사가 문을 닫은 것이다. 이는 작년 상반기보다 26.9% 늘어난 수치다. 폐업의 사유는 대부분이 사업포기다. 창업주 스스로 문을 닫았다. 수익은커녕 빚만 늘다보니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매일 10개사 가까이가 문을 닫는데도 건설사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키스콘에 따르면 8월 기준 건설사 수는 10만121개사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708개사가 증가한 것이다. 사업을 하겠다고 건설업종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의미다. 올 상반기에만 4969개사가 신규 등록했다. 작년 상반기는 무려 9988개사나 된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건설사들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변화는 기업에게 위기를 주기도 하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시공능력평가로 매겨지는 건설사들의 순위는 기업별 부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해 30대 건설사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주택업체들이다. 10년 전인 2013년의 30대 건설사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10년 전처럼 올해도 30대 건설사로 이름을 올린 업체는 22개사다. 8개사는 자리를 내줬다. 이 자리는 대부분 주택업체들이 꿰찼다. 10대 건설사 반열에 올라선 주택업체도 있다.

10년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주택경기가 너무 좋았다. 어디든 집을 짓기만 하면 팔렸다. 이전 정부의 최대 과제가 집값 잡기일 정도였다. 활황세의 주택경기를 잘 탄 건설사는 성장해서 30대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여기에 편승하지 못한 업체는 30대사에서 빠졌다. 심지어 주인이 바뀐 업체도 있다. 위기에서나 기회에서나 모두가 동일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닌 것이다.

최근 몇년간 약진한 주택업체들이 계속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택 경기의 침체가 끝을 알 수 없어서다.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한 사업장이 전국적으로 부지기수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만기가 몰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만도 15조원에 가깝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주택업체들의 성공스토리는 한때 신화로 끝날 수 있다. 과거 우방과 청구처럼 말이다.

정부가 지난 추석을 앞두고 주택공급대책을 내놨다. 3기 신도시와 신규 택지공급 일정을 앞당기고 금융지원을 통해 민간 공급주체들의 막힌 자금줄을 뚫어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달 중에는 카르텔 혁파를 내건 건설산업 혁신방안도 나온다. 정부 예고대로라면 설계와 입찰, 현장관리에 이르는 건설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건설사들은 이제 정책과 제도가 주도하는 변화에 직면했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는 미리 준비하고 대응하는 기업에게 기회가 온다. 최소 위기라도 피한다. 뒤늦은 대응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성공 확률은 낮다. 인간의 한계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관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수명이 아무리 짧아진다고 해도 그것도 기업하기 나름이다.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