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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에 땅 물려준다” 동영상 유언… 대법 “인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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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0-22 14:09:02   폰트크기 변경      

증인 없이 차남 단독 촬영
민법상 사인증여 효력 없어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부모가 ‘일부 자녀에게만 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을 동영상으로 남겼더라도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는 경우 이를 민법상 ‘사인증여(死因贈與)’로 인정할지 여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의 차남인 B씨가 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월 ‘B씨에게 거제시의 땅(논) 일부와 건물 지분 절반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겼다. 이 동영상에는 장남에게도 땅 일부와 나머지 건물 지분 절반을 물려주고, 장남이 나머지 딸들에게 각각 2000만원씩 줘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동영상은 B씨가 직접 촬영해 보관했고, A씨는 2019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A씨가 남긴 동영상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민법상 ‘녹음에 의한 유언’을 남기려면 증인이 ‘유언이 정확하다’는 점 등을 확인해줘야 하는데, 동영상 촬영 당시 다른 증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A씨가 남긴 재산은 법으로 정한 상속분에 따라 A씨의 배우자와 B씨를 포함한 자녀들에게 상속됐고, B씨는 동영상을 근거로 “사인증여가 인정돼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인증여란 증여자가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하고 증여자의 사망으로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계약의 일종이다. 적법한 유언에 따라 재산을 물려주는 ‘유증(遺贈)’과 비슷하지만,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인 유증과 달리 사인증여는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청약’과 ‘승낙’이라는 의사 합치가 있어야 한다.

1ㆍ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영상만으로는 A씨가 B씨에게 부동산을 사인증여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B씨에게 부동산을 사인증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동영상 촬영 당시 B씨가 ‘상속을 받겠다’는 대답을 하진 않있지만, A씨가 촬영 도중 “그럼 됐나”라고 물은 점 등을 감안하면 A씨와 B씨 간에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유언을 하는 자리에 동석했던 일부 자녀(B씨)와의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있다고 보고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모두 배분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언자인 망인과 일부 상속인인 원고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와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동영상에서 A씨가 ‘그럼 됐나’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A씨가 자문한 것일 뿐, B씨에게 물은 것이라 보기 어려워 B씨와의 사이에서만 유독 청약과 승낙이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유언의 효력이 없게 되는 경우 A씨가 다른 자녀들과 무관하게 B씨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유언대로 재산을 분배해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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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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