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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1대 국회 마지막 예산안 심사, 국민과 민생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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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0-31 22:52:56   폰트크기 변경      

총지출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막이 올랐다. 국회는 법정시한인 12월2일 이전에 통과시켜야 하지만 이를 그대로 지킬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정부 첫해인 지난해에도 ‘이재명표 예산’과 ‘윤석열표 예산’의 힘겨루기로 크리스마스 직전에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올해는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로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예산 전쟁이 더욱 치열할 듯하다. 자칫 준예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국회 재적의 과반을 확보한 거야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때보다 ‘칼날’ 심사를 벼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퍼주기 예산을 바로잡으려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다이어트(20년만에 가장 낮은 2.8% 증가율)부터 못마땅한 듯하다. 하지만 지출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더 걷을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 움츠러들 공산이 크다.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할 판에 증세는 시의적절한 처방으로 보기 어렵다. 정부 부채가 무려 120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대규모 적자재정 편성은 올바른 해법이 아닌 것이다. ‘재정 만능주의 및 선거 매표 예산, 정치 보조금과 이권 카르텔’을 차단하지 않으면 건전재정은 요원하다.

세출 구조조정은 전례대로 여야의 ‘주고 받기’가 이뤄질 것이다. 예산 삭감의 권한을 쥔 민주당은 역점사업인 ‘이재명표 예산’을 살릴 의도라면 정부안을 무작정 내쳐서는 안 된다.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윤석열표 예산’을 통과시키려면 현실적으로 민주당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응한 증액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무엇보다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새만금사업, R&D투자 예산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정부 삭감 부분의 절반 정도가 복원된 지역화폐는 이재명표 예산의 핵심사업으로 올해도 무게 중심을 둘 공산이 크다. 새만금사업은 정부가 원점 재검토를 천명한 상황에서 정치적 거래로 되살릴지는 미지수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야 하는 초긴축 재정이란 점을 감안하면 ‘체면치레’ 수준에서 정치적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쟁의 핵심은 R&D예산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R&D 예산안은 25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5조1000억원(16.6%) 삭감됐다. 민주당은 현실을 도외시한 졸속 삭감이라며 줄기차게 원상회복을 주장한다. 정의당 기본소득당도 여기엔 한목소리다.

외견상 동결도 아닌 대폭 삭감은 과학기술계 입장에서 충격일 수 있다. 당장 예산이 줄어들면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인력이 현장을 이탈할 공산이 크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올 만하다. 예결특위 간사인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국가R&D사업의 67%인 1076개 예산이 감액되어 실질적인 삭감액은 6조6000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를 도모하려는 정부안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R&D예산은 문재인 정부 기간이었던 지난 2019년 20조 원을 넘겼지만 올해 31조 원으로 늘어났다. R&D예산이 10조 원에서 20조 원으로 늘어나는 데 11년이 걸렸는데 다시 10조 원 증가하는 데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를 감안해도 이례적인 폭증이다.


이 과정에서 R&D 예산은 눈먼 쌈짓돈으로 전락했다. 중소벤처부가 2015년부터 8년간 R&D예산으로 모두 9조4674억 원을 중소기업에 지원했는데 두 차례 이상 중복지원금만 5조7902억 원에 이른다. 열 번 이상 정부 돈을 타간 기업만 40개가 넘는다고 하니 R&D 카르텔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숫자로 표출된 예산 삭감을 비난하며 다같이 나눠먹는 보편적 지원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정부가 ‘밀어줄 만한’ 선택적 지원 대상을 제대로 골라냈는지, 배분 과정에서 곶감 빼먹는 식의 비효율성은 없는지부터 먼저 따져볼 일이다.

여야는 이번에야말로 양보와 타협의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극단으로 치닫는 소모적 정쟁 대신 오로지 국민과 민생만을 우선해야 마땅하다. 차제에 내년 총선의 표심에 호소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도 이제 손절할 때가 됐다.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 소소위의 밀실합의는 사실상 예산 도둑질이나 다를 바 없다. 21대 국회가 마지막 예산 심사까지 정쟁과 오욕으로 점철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성항제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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