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수천명의 피해자를 낸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제조ㆍ판매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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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9일 김모씨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납품업체인 한빛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김씨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문제가 처음 불거진 시점은 2011년이었다. 당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질환으로 피해자가 속출했고,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씨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2007~2011년까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김씨는 2010년 5월 간질성 폐 질환 등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2014년 3월 김씨에게 ‘가능성 낮음’(3단계) 판정을 내렸다.
이에 김씨는 “가습기 살균제에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상의 결함이 있고 그로 인해 신체에 손해를 입었다”며 옥시 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1ㆍ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반면, 2심은 “가습기살균제에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성분을 사용한 설계상의 결함과 그 용기에 ‘인체에 안전하다’는 문구를 표기한 표시상의 결함이 있고,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김씨와 옥시 등은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제조물 책임에서의 인과관계 추정, 비특이성 질환의 인과관계 증명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제조ㆍ판매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 중 첫 상고심 판결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 조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 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ㆍ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사용자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씨는 2017년 제정ㆍ시행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구성한 구제계정운용위원회에서 ‘구제급여 상당지원 대상자’로 인정됐다. 올해 7월 기준으로 피해자는 모두 5041명에 달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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