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협약은 재산상 손해만 포함… 정신적 손해는 국내법 따라 배상”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비행기 출발이 장시간 지연된 경우 항공사가 승객들의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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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씨 등 승객 77명이 제주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승객 1명당 위자료 40만~7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 등은 2019년 1월21일 오전 3시5분(현지시각) 필리핀 클락국제공항에서 우리나라로 출발하는 제주항공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엔진 등 기체 결함으로 항공편이 결항되면서 A씨 등은 19시간이 넘어서야 다른 비행기에 탈 수 있었고, 이후 승객 1명당 위자료 180만원을 포함해 약 2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는 이른바 ‘몬트리올 협약’에 규정된 ‘손해’의 범위에 정신적 손해도 포함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국제 항공편을 이용한 운송에 적용되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협약 제19조는 ‘운송인은 승객ㆍ수하물 또는 화물의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항공사 측이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거나 이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책임을 면한다.
1ㆍ2심은 “승객 1명당 성인은 70만원, 미성년자는 4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승객들의 정신적 고통이 충분히 인정될 뿐만 아니라 항공사 측이 항공편 지연에 따른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조치를 다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만큼,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1ㆍ2심의 판단이었다.
대법원의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근거는 1ㆍ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몬트리올 협약 제19조의 손해는 재산상 손해를 의미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신적 손해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몬트리올 협약 제19조가 정하는 손해에 포함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법리를 적용해 항공운송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몬트리올 협약 제19조를 직접 적용해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으나, 항공운송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B씨 등 승객 269명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도 승객 1명당 4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 등은 2019년 9월13일 오전 1시10분(현지시간) 태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우리나라로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기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기체 결함에 따른 항공편 결항으로 최대 22시간이 지나서야 다른 비행기에 타게 되자 1인당 70만원씩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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