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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엔캐리 청산 가능성에도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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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20 24:59:58   폰트크기 변경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이 최근 물가상승 압력에 놓여 있는 듯하다. 2022년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3.0% 이상 상승하여 1981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는가 하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계속 웃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금년도 물가상승률 전망을 3%대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의 국제적 인플레이션은 일본도 비껴가기 어려웠으며, 미국과의 금리 차이 확대로 인해 엔화 가치가 하락하자 수입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여 일본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 통화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일본 중앙은행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왔다. 선진국 중 여전히 초저금리 정책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마지막 중앙은행이기도 한 일본은행이 2016년에 도입하여 시행해 오던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최근 단계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의 상한인 1% 초과를 일정 수준 용인하겠다는 것은 정상적 통화정책을 위한 출구전략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단계적이고 미세적인 조정을 통해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나 세계금융시장에서는 일본이 긴축으로 가는 발걸음을 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조만간 수익률곡선제어 정책을 폐기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이제 세계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 저금리 시대의 종말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이다. 세계 주요 기관들은 현재 해외에 투자된 엔캐리 자금이 3조 달러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어떤 통화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국가별로는 10%에 가까운 국채와 주식이 대량으로 매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와따나베 부인’으로 불린 일본 개인투자자들은 국제금융시장의 큰 손이었다. 우리나라도 엔화 부채의 비중이 적지 않은 나라이며, 기업과 개인이 엔화 자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미 엔캐리 청산의 아픈 기억이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도화선은 태국에서 시작되었다. 선진국 은행이 태국에서 회수한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일본계 자금이었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엔화 자금 회수액은 급증하여 태국 바트화가 폭락했다. 이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화폐 가치는 폭락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계 자금의 일시적 환수에 따라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과거 미국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나면 엔화 강세의 시기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9ㆍ11 테러를 전후한 기간,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기간에 엔화 강세의 시기가 있었다. 미국은 오랜 기간의 금융완화정책으로 이어온 저금리를 작년 3월 이후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긴축 전환을 통해 고금리 행진을 이어 왔다. 향후 고금리 기조는 어느 정도 유지되더라고 향후 수순은 금리 인하가 될 것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의 엔화 강세는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이번에도 나타날 수 있고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일본은행의 YCC 상한선 확대에도 달러엔 환율은 150엔 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주요국의 단기금리와 비교해도 일본 금리는 여전히 낮은 수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향후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경우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질 수 있다. 아직은 여러 요인들이 엔화 약세로 작용하고 있으나 미국과 일본 금리차가 보다 좁혀질 경우 그 확률은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

내년부터 미국은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하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화 자금의 일본 귀환이 보다 가파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생각보다 빨리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추이와 더불어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라는 두 가지 변수를 같이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은행의 행보를 긴장하며 살펴보고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정헌용 남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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