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다보성 1층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조선시대 제작된 백자철화운룡문호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김경갑 기자 |
17세기 조선시대에 성행한 철화백자는 철사안료(鐵砂顔料)로 문양을 그려 넣은 회백색의 도자기다. 정제된 태토에 회백색 유약을 시유해 소성한 게 특징이다. 백자철화운룡문호(白磁鐵畵雲龍文壺)는 조선시대 도자예술품 중에 으뜸에 속한다. 용의 몸통은 전반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비교적 단조롭게 압축됐다. 용안은 다소 희화화했고, 구름과 여의주는 간략한 형태로 그려졌다. 전체 구도를 듬성듬성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 이채롭다. 회청색이 감도는 유약을 그릇 전면에 입혔고, 접지면에 가는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있다.
궁중도자기 백자철화운룡문호을 비롯한 고려청자, 조선 시대 백자와 분청사기, 왕실에 걸린 궁중화, 전통산수화, 송나라 정요백자, 원·명대의 청화백자 등을 아우르는 한국과 중국 고미술품 5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에 있는 국내 최대 고미술 전문 화랑 다보성이 23일 개막해 내년 1월31일까지 여는 ‘한국-중국 문화유산의 만남’ 특별전이다. 한국과 중국 수교 31주년을 기념해 두 나라 선조들의 삶 속에 담긴 지혜와 문화를 되새기고 침체된 고미술 시장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기획했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명품, 명작들로 총 보험가액만 수천억 원에 달한다.
▲국보급 청자와 궁중도자기 수두룩
청자상감포도동자문표형주자 /사진:다보성 제공 |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국 고미술 걸작들이 스스로 발화하는 등불처럼 빛과 기운을 힘껏 뿜어낸다. 조롱박 형태의 날씬한 몸매가 돋보이는 청자상감포도동자문표형주자(靑瓷象嵌葡萄童子紋瓢形酒子)가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고려 사람들이 스스로 비색(翡色)이라 일컬으며 자랑했던 투명한 녹청색을 실감하기에 제격이다. 본체 표면에 연주문(連珠紋), 연판문(蓮瓣紋)을 촘촘히 세워 모양을 만들고 마디마다 홈을 파서 백토를 넣고 구워낸 백상감 기법이 빼어나다. 김기열 다보성 실장은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굽은 안굽으로 접지면의 유약을 걷어내고 점토가 섞인 내화토 빚음을 받쳐 구웠고 안바닥에 ‘공(公)’으로 보이는 명문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발길을 살짝 옆으로 옮기면 조선 시대 국보급 도자기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15세기 때 제작된 ‘백자철화용문호(白磁鐵畵龍紋壺)’는 풍만하게 벌어진 둥근 몸체가 어깨까지 팽창된 형태여서 당당하고도 대담한 느낌을 준다. 몸체 위쪽에는 검은색 안료인 철사(鐵砂)를 사용해 용 문양과 모란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몸통 전체가 둥근 형태의 조선백자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19세기에 제작된 96cm 높이의 백자청화산수인물문각병(白瓷淸畫山水人物紋甁) 역시 얼굴을 빼쭉 내민다. 대나무가 있는 누정에 앉아 연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정갈하게 묘사했다.
분청음각어문편병 /사진:다보성 제공 |
15세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한 분청도자기도 눈에 띈다. 높이 19.5㎝의 분청음각어문편병 (粉靑瓷陰刻魚雲紋甁)은 선각분청의 특징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맑은 녹색이 감도는 그릇 전면에 적당한 균형과 긴장된 선의 흐름을 잘 간직하고 있고, 꿈틀거리는 물고기의 자태를 그린 묘사력이 압권이다.
국보 제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와 비슷한 삼국시대 금목걸이도 나와 있다.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사슬과 속이 빈 금구슬을 교대로 연결하고, 맨 끝엔 굽은 옥형을 장식한게 독특하다.
▲나한도 등 고서화 명작들도 눈길
고서화 명작들도 고루 자리했다. 석가모니의 제자를 그린 나한도(羅漢圖)는 섬세하고 우아한 필치와 화려한 구성이 다부지다. 조선 중기 화가 허주 이징의 ‘금니산수도(金泥山水圖)’는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물을 사용해 하늘로 치솟은 먼 산의 봉우리와 능선을 세필로 그린 작품이다.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미륵하생변상도(彌勒下生變相圖)도 걸렸다. 석가모니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중생들을 위해 세 차례 설법회를 열어 모두 성불시킨다는 내용을 현란하게 녹여냈다. 조선의 마지막 왕후인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 민영익이 그린 묵란도, 근대화가 최영림의 ‘해변 여인’에서도 대가들의 독특한 화풍을 감상할 수 있다.
다보성측은 “기품 있는 불교 미술을 비롯해 궁중장식화, 서정적인 산수화, 해학 넘치는 풍속화, 글씨 등을 통해 조상들의 작업이 얼마나 폭이 넓고, 역량이 탁월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란한 빛을 발하는 중국 문화재
2,4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에는 주로 희귀한 중국 유물을 배치했다.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신석기시대 흑도를 비롯해 홍산문화의 옥기, 한대의 도용(陶俑), 송대요(定窯) 백자, 원나라·명나라 청화백자, 청나라 채색 자기 등이 멋스러움을 뽐낸다.
금련천막부 청화유금서수문상이반구병 /사진:다보성 제공 |
가장 눈길을 붙잡는 작품은 원나라 도자예술의 백미 ‘금련천막부 청화유금인물문화구병 (金莲川幕府青花鎏金人物纹花口瓶)’이다. 긴 목에 구연부가 나팔 꽃송이처럼 벌어져 있고 어깨에 짐승 머리 모양의 두 귀가 달린 화구병이다. 몸체 표면을 금으로 도색한 뒤 파초와 모란이 있는 정원을 청화로 붓칠했다. 굽바닥에는 원라나 시대 최고의 관청 '금련천막부(金蓮川幕府)'라는 관지가 쓰여있어 궁중 유물임을 직감할 수 있다.
기원전 771년에 발원한 주나라 시대 왕실 제사에 쓰인 청동용기 ‘금문사족사이도철문반(金文四足四耳饕餮纹盘)’도 다소곳이 전시장을 지키고 서 있다. 주나라 천자에게 감로수를 하사받은 왕이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빼곡이 적혀 있다. 다보성 측은 “대체로 청동기 시대에는 특정 사건이나 사실이 금문(金文)으로 남겨졌으며, 이 청동반 역시 당시의 문화를 금문으로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명나라의 화선‘ 문징명(1470~1559)이 1525년에 그린 산수화도 걸렸다. 가로 9m가 넘는 화폭에는 섬세한 필치와 담백한 색상으로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넣었다. 산등성이와 바위에는 연두색의 태점을 찍어 그림에 활력을 준다. 완벽한 구도와 뛰어난 색감이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의 깊이를 돋보이게 한다. 명나라 말기 대표적 서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낙관이 찍혀 있어 당시 소중한 애장품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밖에 원나라 황실에서 두루마리 종이 등을 보관하는 지통 ‘청화귀곡자하산문지통 (青花鬼谷子下山纹卷缸)’,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제백석의 화첩과 인장, 청나라 건율제 때 제작된 용무늬 항아리 ‘건륭어람지보 청화연지홍채용문관 (乾隆御览之宝青花胭脂红彩龙纹罐)’, 밑바닥에 '건륭어제(乾隆御製)'라는 관지가 쓰여있는 해머모양의 법랑채 봉퇴병(棒槌甁) 등은 중국 고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중국 유물 60점 온라인 경매
다보성갤러리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중국 도자와 먹 등 희귀작 60점을 경매에 내놓는다. 23~30일 진행되는 온라인 경매에는 원대 금련천막부 청화유금서수문상이반구병(金莲川幕府 青花鎏金瑞兽纹象耳盘口瓶), 명대 선덕 청화운룡문관(宣德 青花云龙纹罐), 청대 집호형주사먹(执壶形朱砂墨) 등이 새 주인을 찾는다. 고대 신화 속 인물인 '항아'와 달을 형상화해 표현한 먹, 코뿔소의 뿔로 만든 찻잔 등 다양한 유물이 나올 예정이다.
김종춘 다보성 회장은 “명·청대의 유물을 비롯해 희귀하고 가치 있는 중국 문화유산을 느끼고 소장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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