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27년 46세의 피카소는 첫 부인 올가와 결혼생활을 하던 중 파리에서 젊고 아리따운 열일곱 살의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만난다. 한동안 비밀로 지켜졌던 이들의 관계는 1932년 피카소의 대규모 회고전에서 발테르의 초상화가 처음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피카소는 당시 발테르를 모델로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 , ‘꿈’, ‘검은색 소파에 누워 있는 누드’, ‘시계를 찬 여인’ 등의 수작을 쏟아냈다. 피카소는 일생 동안 여인을 계속 뮤즈로 삼아서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
프랑스 파리가 독일군에 점령된 1941년 당시 65세이던 피카소는 법학을 공부하다 그림에 빠진 스물한 살의 여섯 번째 뮤즈 프랑수아즈 질로를 만난다. 프랑수아즈와 10여년간 동거하다 끝내 갈라선 파카소는 그때(1953년)부터 대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독특한 방식대로 변형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1955년에 완성한 ‘알제의 여인들’은 피카소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1836년 작품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
피카소가 대가들의 작품을 재현하기 시작한 시기에 제작된 그림이 국내 경매시장에 처음 나왔다.
서울옥션은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되는 기획 경매에 피카소의 여성 초상화를 비롯해 국내 외명화가 작품 103점을 경매에 부친다. 낮은 추정가 총액은 약 125억원이다. 지난해부터 미술 경매시장이 점차 조정을 벗어나고 있는 데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작품값이 오르고 환금성도 좋아질 전망이어서 경매에 도전해볼 만하다.
피카소의 '올림머리를 한 여성의 초상' /사진: 서울옥션 제공 |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피카소의 작품 ‘올림머리를 한 여성의 초상(Tete de Femme au Chignon)’이다. 추정가 30억원에 출품된 이 작품은 얼굴 왼쪽은 옆모습을, 오른쪽은 정면을 묘사한 이중 시점으로, 피카소의 입체주의(큐비즘) 기법이 확연히 녹아있다.
서울옥션의 고정호 홍보팀징은 “지금까지 국내 경매에 출품된 피카소의 작품은 대부분이 판화와 드로잉, 도자화로 유화는 많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초상화가 출품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경매는 컬렉터뿐만 아니라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거장의 대표적 도상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박서보의 '묘법'No.100131' /시진: 서울옥션 제공 |
지난달 별세한 박서보 화백의 작품도 일곱 점이나 경매에 오른다. 2010년작 노란색 묘법 'No.100131'은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정교한 기법과 화려한 색채에 대한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수작이다. 추정가는 최소 5억5000만∼7억원으로 매겨져 있다.
이우환의 추상화 ‘조응’, 근대화가 장욱진의 작품, 조각가 권진규의 작품들도 얼어붙은 시장을 녹일 경매 카드로 전면에 배치돼 있다. ‘큰손’ 컬렉터들의 구입 리스트 상단에 자리하는 흥행 보증수표인 만큼 벌써부터 응찰 경쟁이 기대된다. 이밖에 국내외 미술시장의 이머징 작가 김선우, 옥승철, 샘바이펜 등 신진 작품들도 대거 새 주인을 찾아 나선다.
고미술품 분야에서는 단연 조선시대 제작된 보물급 분청도자기가 눈에 띈다. 높이 42.5cm의 크기의 '분청사선각영모초화문호'는 귀얄 자국과 간략한 필치의 문양이 분청자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잘 보여주는 희귀작이다. 15세기 후반 전북 고창 용산리나 수동리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작가 작품으로는 매드사키, 조르디 커윅, 아야코 록카쿠 등의 유니크한 원화부터 앙리 마티스,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마르크 샤갈 등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판화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다. 경매 출품작은 경매 당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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