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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젖과 굴이 흐르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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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05 06:00:39   폰트크기 변경      
‘바다의 우유’ 굴의 계절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굴이 밑반찬으로도 나온다.


동서고금을 털어 많은 명사가 사랑했던 음식이 굴이다. 매주 1200개의 굴을 까먹었다는 로마 세네카, 카이사르,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프랑스 앙리 4세, 베네치아 공국 카사노바, 미국 헤밍웨이, 일본 하루키 등 이루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굴을 즐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직 바다의 맛과 즙이 풍부한 식감만 입안에 남았을 때 나는 껍데기에 남은 차가운 바닷물을 마신 후 입안을 화이트와인의 청량함으로 또 한 번 씻어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공허한 기분을 털어내고 행복에 젖어 다음 계획을 세우게 된다.”

작가이자 여행가, 또 미식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행복에 겨워하며 굴을 극찬했다.


호반 강굴 


대한민국은 신선굴이 세계에서 가장 싼 나라다. 세계 양식 굴 생산량 2위다. 신선 상태로 유통되는 굴만 따지자면 1위다. 덕분에 굴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은 평범한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주는 굴 한 접시를 보면 거의 기절초풍한다. 한국을 소개하는 유튜브에 굴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대개 한국의 굴 인심에 놀라는 내용이다.

우리 입장에선 그저 피식 웃고 만다. 겨울이면 한국인은 굴을 거의 상식한다. 반찬으로 먹고 김치를 담글 때 넣기도 한다. 석화야 당연히 회로 즐기고 굽고 찌고 전으로 부쳐 먹는다.


충무집 굴전


알굴을 사다가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와 한잔 들이켜는 경우도 일상다반사. 굴 하나에 몇 유로씩 하는 유럽에서 온 이들의 입장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굴 마니아의 천국’이다.

신선한 석화는 그냥 레몬즙을 살짝 뿌려 입안에 넣고 매끄러운 감촉을 즐긴 후 살짝 씹으면 된다.

혀로도 씹을 수 있을 만큼 보드라운 살이 톡 터지며 바닷물과 섞인 짭조름하고 청량한 육즙을 내뿜는다. 여느 조개와는 달리 굴의 육즙에는 진한 풍미가 가득 들었다. 바로 감칠맛이다. 맛을 내는 조미료의 자연 성분이다.


서산 간월도 맛있는 햇굴로 지은 굴밥


동장군이 몰아치는 요즘엔 굴국밥이나 굴 칼국수가 제격이다. 알굴을 사다가 솥에 쌀과 함께 넣고 굴밥을 하면 반찬이 따로 필요 없다. 그래도 남았다면 달걀 옷을 입혀 살짝 지져 굴전을 먹어도 좋다. 작은 굴(어리굴)에 양념을 해 하루쯤 묵혀두면 어리굴젓이 돼 밥을 도둑질한다.


남포마을의 겨울 별미 굴구이


전남 장흥과 여수, 거제 등에는 장작불을 때고 석화를 올려 굴을 구워 먹는 굴 구이집이 있다.

눈 오는 날 바닷가 굴 구이집에서 마이클 잭슨처럼 한 손에만 목장갑을 낀 다음, 껍질 속에서 보글보글 끓는 굴 알맹이를 꺼내 먹으면 겨울의 낭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요즘은 중국음식점에서도 일제히 굴짬뽕을 낸다. 재빨리 굴과 채소를 볶아 육수를 내는데 굴의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빨간 양념 대신 뽀얀 국물을 낸다.


장흥 매생이 굴떡


떡국에도 잘 어울린다. 제철이 ‘겨울동기’ 매생이와도 잘 어울린다. 떡국도 겨울이라 이 세 동창이 만난 것이 바로 매생이 굴 떡국이다.

맛이야 워낙 좋기로 소문났지만 영양가도 어마어마하다. 어패류 중 단백질과 무기질이 가장 많은 축에 든다. 가장 많은 성분은 바로 아연. 굴은 생태적 특성이 바닷물 속 아연을 섭취해 몸에 축적한다. 아연 성분은 정자 생성과 왕성한 활동을 돕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한다고 알려졌다.

카사노바가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는 대목이 바로 이해가 간다.


어리굴젓


남성에만 좋을까. 굴에는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효소를 함유했다 해서 여성 미용에도 좋다. 이 밖에도 셀레늄, 철분, 칼슘, 비타민 AㆍD 등을 많이 품고 있다고 한다.

12월이면 굴에 맛이 단단히 든다. 국내 최대 산지인 통영시에 가면 조업장, 박신장(굴 껍데기를 벗기는 곳), 경매장이 성황이다.

온라인 쇼핑과 유통 환경도 좋아 굴을 주문하면 얼음에 재워 그 다음날이면 어제 채취한 굴을 집에서 맛볼 수 있다.

굴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세상 어느 곳에도 대한민국 같은 호사는 없다. 바다가 더 이상 더러워지기 전에 지금 굴을 만끽해야 하는 이유다.


글ㆍ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용머리굴찜 




[어디서 먹을까?]


굴 시즌을 맞아 전국에 굴 요리 잘하는 집을 모았다.

△인천집 굴전 : 서울의 대표적 외식 거리인 다동 무교동에서 조개칼국수로 긴 줄을 세우는 집. 보쌈 등 다양한 술안주도 많아 저녁이면 인근 직장인 술꾼들이 모여든다.

겨울이면 통영에서 직송되는 신선한 굴을 식탁에 올린다. 통영 종갓집 전통 솜씨로 맛깔 나게 부쳐낸 굴전이 맛있다. 그냥 먹어도 될 것을 아깝게 왜 전을 부치냐고? 좋은 식재료는 열을 가해도 그 신선도는 어딜 가지 않는다. 제철 맛이 든 굴은 달고도 진하다. 굳이 다른 감칠맛(간장)에 찍지 않아도 충분히 혀를 적신다. 굴은 본래 짭조름한 바다 맛을 품어 간도 적당하다. 고소한 기름 맛을 더하고 싱그러운 파 맛까지 얹어주니 안 그래도 부드러운 굴을 흐뭇하게 삼킬 수 있다. 서울 중구 다동길 36. 8000원.

△호반 강굴 : 서울 익선동이 뜨기 전부터 자릴 잡은 노포다. 인기 많은 메뉴가 있지만 가을부터 봄까지 강굴을 파는데 이게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곳 강굴은 강(江)굴이 아니다. 광양에서 유명한 민물굴(벚굴) 강굴이 아니라, 서해안 서산 앞바다에 사는 자잘한 굴이다. 원래 씨알이 작은 게 아니라 간조 때 수면 위로 나와 햇볕을 받아 그렇다. 굴은 물속에 잠겨 있을 때 큰다. 2∼3㎝ 정도 크기에 거뭇거뭇 푸르스름한데 고소한 맛이 진하고 물날개가 많아 씹는 맛이 좋다. 한 접시에 한가득 강굴을 담아낸다. 초장 대신 양념장을 주는데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린다. 크기가 잘아 귀찮다면 숟가락으로 퍼 양념장을 얹은 다음 한술 꿀꺽 삼키면 만족감이 더하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26길 20. 시세.


맛이차이나 굴짬뽕


△맛이차이나 : 요면 요리, 식사면 식사. 자자한 입소문을 끌고 다니는 상수동 중국음식점이 겨울 한정으로 해물과 채소를 큼지막한 굴과 함께 볶아 육수에 말아낸 굴 짬뽕을 선보인다. 애호박과 양파, 배추 등이 아삭하고 이를 품고 있는 진한 육수가 일품이다. 감칠맛이 녹아난 국물이라 일반 짬뽕보다 약간 점성이 있어 면이 따로 놀지 못한다. 면을 채소와 함께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며 사발을 들어 후루룩 국물을 마시면 식도를 타고 온몸에 맛이 돌기 시작한다. 건더기도 푸짐하고 국물도 넉넉하다. 국물이 혀에 짝짝 붙어 면을 다 건져 먹고도 밥을 말고 싶을 정도. 서울 마포구 독막로 68. 1만2000원.


열차집 굴전과 어리굴젓


△열차집 굴전과 어리굴젓 : 서울 종로를 ‘전집 거리’로 유명하게 만든 대표 노포다. 밥 메뉴 없이 전만 부쳐다 파는데 요즘은 굴전이 인기다. 도톰하게 살이 오른 굴에 계란 옷을 입혀 바로 번철에 부쳐낸 굴전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름내가 가시기도 전에 차가운 어리굴젓(굴조개젓)을 얹어 한입에 쏙 넣는다. 뜨거우면 재빨리 막걸리를 들이켜면 된다. 굴전에 굴젓이라니. 굴과 굴이 만났지만 맛도, 온도도 대비돼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 방금 부쳐낸 굴전은 감칠맛을 주고, 칼칼하니 양념을 흠뻑 묻힌 어리굴젓은 깔끔한 마무리를 돕는다. 막걸리 한 모금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맛의 코스다. 서울 종로구 종로7길 47. 2만 원.


고흥 월포가든  굴 칼국수


△고흥 월포가든 : 분명히 카페인데 매생이가 든 굴 칼국수 메뉴라니. 겨울 바다의 친구 둘이 거금도 식당의 한 사발 안에 들었다. 통영에 위판하지 않는 지역 자생굴이다. 물론 투석식이나 지주식으로 키우긴 한다. 바다에서 났지만 해조류와 어패류는 많이 다르다. 맛도 다르다. 굴이 아미노산 특유의 감칠맛으로 밑국물을 받치면 매생이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는 형식으로 의기투합한다. 여기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칼국수가 들어 있어 졸깃졸깃 씹는 맛을 더한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호로록 빨아들이면 좁은 입안으로 넓은 바다가 밀려든다. 아연과 타우린, 칼륨까지 다양한 무기 영양도 좋다. 뜨거운 매생이 굴 칼국수 한 그릇에 겨울바람 차가운 줄 모른다. 고흥군 금산면 오룡동길 19. 7000원.


△사계절굴구이 : 전남 정남진 장흥엔 굴구이 거리가 둘이나 있다. 관산읍 사계절은 분위기 좋게 굴을 실컷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커다란 양철 솥 위에 주먹만 한 석화를 올려놓고 구운 후 칼로 껍질을 까먹는다. 툭, 툭 굴 껍데기가 열을 뱉으며 벌어지면 비로소 잔치가 시작된다. 탱글한 굴을 얼른 집어 입속으로 가져간다. 헤밍웨이 말처럼 바다가 한가득 밀려온다. 그 유명작가와는 달리 샴페인 대신 소주나 막걸리 한 잔으로 굴향을 배가 시킨다. 얼추 다 먹었을 때쯤 짜장면을 시키면 탄수화물 모자라 허한 속을 달랠 수 있다. 웬 짜장이냐고?. 실은 이곳 사장님이 예전에 유명한 중국집을 운영했다 한다. 석화구이(3인 이상) 5만5000원.


굴구이집 자장면


△서산 간월도별미영양굴밥 : 서산 간월도는 어리굴젓이 유명한 지역. 또 굴을 넣고 지은 굴밥 또한 별미다. 간월도 인근에 있는 간월도별미영양굴밥은 주문 즉시 돌솥에 굴밥을 지어 올린다. 송알송알 굴을 얹고 밥을 안친 후, 돌솥에 밥이 되면 달큼한 양념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데, 얼핏 쉬워 보이지만 집에서 재현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맛을 낸다. 곁들이는 찬도 면면이 좋지만 돌솥 안에 채소와 굴이 모두 들어 한 그릇으로 충분하다. 정말이지 ‘영양밥’이다. 갓 지은 밥에 굴 맛이 배어들고 거기다가 또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나는 양념장을 비비니 어찌 맛이 없으랴. 입에 굴밥을 한 보따리 우겨넣고 코로 바다 내음을 함께 들이켜면 그 향기가 더욱 맛깔 난다.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69-1. 1만7000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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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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