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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엑스포 유치 실패와 사회적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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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06 10:10:28   폰트크기 변경      

사회과학에서는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가 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9세기에 처음 사용했던 용어였지만, 그 이후 이 용어는 한동안 잊혀진 단어가 됐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해당 용어는 사회과학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 자본은,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붕괴 도미노’ 당시, 다시금 중요한 용어로 떠오른 것이다. 붕괴 이후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됐기 때문이었다. 즉, 사회 자본의 싹이 관찰되는 국가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약간 상이하다. 하지만 공통적인 측면도 있다. 용어 정의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회 자본에서 사회적 신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신뢰는 특정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에 기여할 수 있지만, 특히 제도의 안정성과 정권의 안정적 운영에 기여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때문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원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는, 살다 보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사안임은 분명하다. 과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과정을 돌이켜보더라도, 다시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유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번 유치 실패는 중요한 문제를 남겼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뢰에 대한 문제가 노출됐다는 것이 그것이다.

정부는 투표에서 우리가 결선 투표에 올라가면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결선 투표에 올라갈 확률도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상황적인 요인도 들었다. 사우디는 2034 월드컵 유치에도 성공했는데, 엑스포와 같은 국제 행사를 사우디가 또다시 유치할 확률은 적다는 논리도 펼친 것이다.


하지만, 2025년에 일본 간사이 엑스포가 열리는데, 아시아 지역에 연이어 두 번의 엑스포 개최의 기회를 주지는 않을 수 있다는 예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결과는 116대 29였다. 적어도 50표 이상 정도를 획득했다면,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정부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결선 투표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으며, 역전의 가능성을 언급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국가적 대사 유치 가능성을 예상할 때는, 막연하고 주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상황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런 주관적 희망을 토대로 한 ‘자의적 상황 판단’을 국민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면으로 지지를 표명했던 국가들을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나친 낙관론에 빠지지 않았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점검은 필요하다. 점검이 필요한 이유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민적 신뢰가 필수적이다. 만일 정부 정책 추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되면,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그 손해는 정부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이번 엑스포 유치과정에서 손상된 신뢰를 복구해야 하는 것이다. 신뢰의 복구를 위해서는,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또한, 이와 관련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래야만 동일한 과오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야당이 보이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은 문자 그대로 야당이기 때문에,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치더라도, 국민들의 실망을 분노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공당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반성과 함께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고, 야당은 이번 실패를 정치적 공격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외교와 국가 대사(大事)는 정권을 초월해 추진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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