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 그리고 건설 R&D 정책 기조는 신기술 개발 및 우대다. 정부는 건설 R&D를 과학기술과 동일시한다. 산업체와 공사현장은 신기술 사용을 꺼린다. 과학기술과 공학기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를 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실현되지 않는 미래를 겨냥한다. 실패를 허용하고 또 생산성을 중요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과학기술은 도전이 본질이다.
공학기술은 현재이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품질하자나 안전사고는 당장의 문제이기 때문에 검증된 기술이 아니면 도입을 기피한다. 건설기술이 타 산업에 비해 낙후되었다는 평가가 겉으로는 정당해보이지만 속성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건설기술을 도제학습으로 완성도와 성숙도를 높여왔다. 도제는 신기술보다 전통기술을 반복함으로써 실패를 줄여 생산성을 높여가는 현장학습 방식이다. 과거 건설기술의 시각으로 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변했다.
음식점에 원조경쟁이 붐일 때가 있었다. 식당마다 간판에 원조를 내걸었다. 원조는 단 하나만이 존재해야 하는데 식당을 찾는 소비자에게 큰 혼란을 줬다. 원조 상표분쟁이 법정에 여러 번 등장했었다. 지금은 원조라는 간판보다 입소문이나 SNS를 통해 맛집이 어디라는 것 정도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건설에 원조기술이 있고 또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원조기술은 말 그대로 최초로 시도된 기술이다. 원조기술은 현장 실습을 통해 완성도 및 성숙도가 높아진다. 도제기술은 원조기술의 복사다. 복사단계를 지나면 원조기술에 약간의 변형을 첨가한 복제(replication)기술로 발전하게 된다. 성공한 빠른 추격자는 복제기술을 끝판왕으로 생각한다. 한국건설은 아직 복제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은 다음 수순으로 복제기술을 해체하는 이른바 리버스 엔지니어링(기술복기)을 통해 독자기술 개발에 도전한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술개발 진로다. 한국의 원전(原電) 기술 개발도 이 과정을 거쳤다.
21세기 초반부터 큰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산업과 산업, 기술과 기술의 경계선이 무너져 융합기술 대세로 변했다. 융합기술은 유효수명이 극히 짧고 또 다양화라는 변수로 포장된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는 의미다. 2007년에 등장했던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원조라지만 용도와 사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융합기술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 인공지능 및 타 산업과 기술의 융합으로 탄생되는 고유기술이다.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을 흔히 최신, 최첨단, 최고 등 ‘3최’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원조기술을 기반으로 신기술을 재탄생시킨 것에 불과하다. 기존 컴퓨터가 재탄생되어 양자컴퓨터로 발전되는 것과 같다.
기술의 속성과 변화 흐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융합, 디지털, 인공지능 등에 휘둘리거나 핵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게 된다. 인공지능, 빔, 디지털, 데이터과학 등이 건설기술을 대체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공학교육과 현장실습 과정을 거친 숙련기술인보다 새로운 용어로 포장된 전문가를 우대한다. 건설인에게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접목시키는 교육보다 빔이나 인공지능 전문가에게 건설기술을 맡기는 경우가 흔하다. 건설기술이 몸이라면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옷에 불과하다. 건설기술이 본류고 외생기술은 지류다. 옷에 몸을 맞출 것인지, 몸에 옷을 맞출 것인지에 답은 정해져 있다. 왜 정부와 산업계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가?
건설기술의 목적은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성능이 우수한 목적물을, 품질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최소비용으로 최단기간에 완성시키는 것이 건설기술의 본질이다. 수요자 요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주문자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공급자가 갖춰야 하는 원천기술은 본류기술을 수요에 맞게 가공 혹은 조합, 즉 기술을 디자인하는 제조기술 도입 여부를 판단할 때다. 산업체는 시장을 만족시키는 본류기술 강화가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한국건설이 언제쯤 지류기술 만능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