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정치세력의 국민경시 가치관이 심각하다. 지난달 17일 민주당의 청년층 대상 홍보현수막에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등의 문구가 적혔다. 청년을 공동체와 담쌓고 경제개념 없이 돈만 밝히는 존재로 낙인찍었다. 지난달 21일 허영 민주당 의원은 준연동형제 비례대표 의석수 계산방식에 대해 “국민은 알 필요 없다. 국민이 산식 알고 투표하냐”라고 말했다. 유권자가 표를 내뱉는 자판기인가. 지난달 9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한동훈 법무장관을 ‘어린 놈’으로 언급했다. 나이로라도 제압하겠다는 절박함이 배인 ‘꼰대’ 행태다. 지난달 30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가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치켜세우며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을 비하했다. 종교인의 천박한 말에서 친민주당 인사의 남성우월 의식과 오만함이 드러난다. 말의 근간은 생각이다. 국민이 감내할 만한 수준인가.
둘째, 정치인 막말이 국민정서를 황폐화시킨다. 지난달 19일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를 빗대어 “암컷들이 나와 설친다”고 조롱했다. 동석한 의원은 박장대소했고 여성의원도 동조했다고 한다. 비판여론에 대해 “이게 민주주의야, 멍청아('It's Democracy, stupid!)”라고 대응했다. 당원권 6개월 정지징계에 “내가 그렇게 빌런(villain)인가?”로 반문했다. 여성 강성지지층에 기댄 채 여성을 비하하는 모순적 행태에서 민주당의 자기통제력 상실을 직감한다.
셋째, 정치판은 여지없이 막장을 향하고 있다. 지난 1일 이동관 방통위원장 사퇴로 민주당 탄핵안은 자동 폐기됐다. 당시 민주당은 사표를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물러나라고 탄핵하면서 그만두지 못하게 하려는 태도가 황당하다. 정략적 의도가 보인다. 이재명 대표의 수사 검사만 다수 의석으로 탄핵했다. 피의자가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 업무를 중단시킨 것이다. 지난달 28일에는 방통위원장 탄핵안 근거로 ‘검찰청법 규정’을 넣었다. 동시 추진한 검사탄핵안 문구를 복사해 붙이면서 빚어진 촌극이다. 컨닝(cunning)하면서 이름까지 베껴 쓴 것과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법안이니 예견된 결과였지만 협상·설득 없는 불통·독선의 정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와중에 657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처리는 헌법상 시한(2일)을 넘겼다. 민생경제법안은 쌓여 있고 경제상황은 엄중하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고 물가압박은 더 심해졌다. 그래도 선거가 닥치면 또 다시 안면 몰수하고 표를 구하는 여야 정치인을 보게 될 것이다. 용납할 수 있겠는가.
집권여당은 기득권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 6일 김기현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회동하면서 험지출마 등 희생요구안 수렴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지난 7일 혁신위는 42일 만에 막을 내렸다. 노른자위는 기득권 인사가 독차지하면서 험지출마자를 찾는 외연확장이 가능하겠는가.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의 부재다. 외과적 수술이 시급한 대목이다.
‘막판’ 정치를 뒤엎는 난극당치의 동력은 민심이다. 그릇된 가치관과 막말로 국민의 마음·영혼에 생채기를 낸 정치인은 심판을 받는다. 혈세를 축내며 자기안위에 노심초사하고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정치세력도 초토화된다. 위기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일그러진 상황을 제 자리로 돌려놓은 주체는 언제나 국민이었다. 봄기운은 겨울 한 복판 동지(冬至)에 싹터서 이듬해 입춘(立春)에 퍼진다. 내년 봄 민심은 정치판을 어떻게 재편할까. 한 겨울 막판정치에서 봄의 희망을 노래한다.
김인호 前국방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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