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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박서보-데미안 허스트…70억대 고가미술품 경매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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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11 15:11:26   폰트크기 변경      
케이옥션 20일 겨울 경매…국내외 미술가 작품-고미술 101점 출품

김환기의 뉴욕시대 십자구도 작품 7억5000만~20억원

지난 10월 작고 박서보 초기-중기-후기 묘법 새주인 찾아

조상 손때 묻은 도자기 명품 청자와 백자 21점 선봬


김환기의 추상화 ‘4-VI-69 #65’ /사진: 케이옥션 제공

한국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 화백(1913~1974)은 1963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해 명예상을 받은 뒤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그때 나이 50세. 홍익대 미술대학장과 한국미술협회 회장직을 과감히 버리고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 절체절명의 각오로 자신의 미학세계 대혁신을 꾀했다. 그는 1974년 작고하기까지 낯선 땅 뉴욕에서 매일 16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의 뉴욕 시대는 기존의 구상과 반구상의 작품경향에서 과감히 벗어나 완전한 추상으로 변모하는 시기였다. 김환기가 1969년에 제작한 십자 구도의 추상화 ‘4-VI-69 #65’는 당시 자주 쓰던 푸른색과 노란색, 붉은색 계열의 색채를 균형있게 배치하며 점-선-면에 대한 조형적 탐구를 집대성한 대표작이다. 대상과 모티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완전히 순수한 추상의 세계, 즉 절대 추상의 세계로 한 걸음 다가서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환기의 십자구도의 추상화 눈길

김환기의 십자구도의 추상화를 비롯한 영국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일본 야요이 쿠사마와 아야코 록카쿠,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그림, 국보급 도자기 등 주옥같은 작품 101점이 연말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이 오는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여는 올해의 마지막 경매잔치를 통해서다. 출품작의 낮은 추정가 총액만도 약 7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부터 미술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지만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세를 탈 것으로 보여 작품값이 오르고 환금성도 좋아질 전망이어서 경매에 도전해볼 만하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명품, 명작들로 총 보험가액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지난 9일 시작해 경매 당일까지 이어지는 1층 프리뷰 전시장에 들어서면 걸작들이 스스로 발화하는 등불처럼 빛과 기운을 힘껏 뿜어낸다.

김환기의 뉴욕시대 십자구도 추상화 ‘4-VI-69 #65’(추정가 7억5000만~20억원)가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화면을 네 개로 분할해 각각의 모서리에서 번져 나오는 색면의 구도가 인상적이다. 면 또는 면끼리 맞닿은 선은 서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며 퍼져 나간다. 수채로 그린 것처럼 번져가는 색은 파리 시절 두터운 마티에르에서 벗어나 뉴욕에서 시도했던 회화적 실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데미안 허스트의 ‘무제’ /사진: 케이옥션 제공


▲최고 9억원대 데미안 허스크의 하트

발길을 살짝 옆으로 옮기면 '미스터 데스'(Mr.Death) '잔혹한 현대작가' 등의 수식어 따라 붙는 영국 대표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눈길을 붙잡는다. 추정가 5억8000만~9억원의 ‘무제’는 핑크색 하트 모양의 캔버스에 무지개 빛깔의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나비를 붙여 삶과 죽음에 대한 탐구를 시각화했다. 언뜻 희망과 아름다움을 채색한 듯 보이지만 나비의 대학살을 통해 생물의 고통과 절망을 함께 응축해낸 게 이채롭다. 데미안 허스트는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영국 현대미술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잘린 상어, 죽은 소, 박제된 나비,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 등 엽기적인 소재를 통해 죽음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풀어내며 현대미술사의 중심에 서 있다.


박서보의 연필 묘법 ‘No. 213-85’ /사진: 케이옥션 제공

지난 10월 작고한 박서보의 시기별 명작들도 고루 자리했다. 1985년 제작한 연필 묘법 ‘No. 213-85’(추정가 8억3000만 ~15억원)은 연필로 수만번 선을 그어 만들어낸 수작이다. 실제로 연필 묘법은 1967년 네 살 난 아들이 한글 쓰기 연습을 하며 쓰고 지우고 또 쓰는 모습에 착안해 시작해 20년간 이어졌다. 행위의 반복성과 무목적성,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을 수신(修身) 혹은 치유 개념으로 치환해서인지 색다른 감흥이 느껴진다.

박 화백이 1991년에 제작한 ‘No. 910116’은 ‘지그재그 묘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 고유의 수제 닥종이를 물에 불려 캔버스에 여러 겹 올리고, 그 위에 물감을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붙이는 등의 행위를 반복해 완성했다. 300호 크기의 붉은색 묘법에서는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와 자 같은 도구를 이용해 밭고랑처럼 파인 면을 만든 기발한 아이디어가 싱그럽게 다가온다. 한국 단색화를 탄생시킨 선구자인 박 화백의 열정적인 삶과 예술세계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하다. 전시장을 찾은 60대 미술애호가 한창은 씨는 “박 화백은 동양적 사상을 온전히 담아내며 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한 '거장'답다”며 “고행이 흔적과 참신한 상상력에 감탄했다”고 호평했다.


▲이우환-이대원-하종현의 수작들 등장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들도 전시장 벽면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최근 베를린의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시작한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No. 77013’(4억3000만~ 5억5000만원)를 비롯해 하종현의 ‘접합 18-05’(1억9000만~3억원),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100호 작품 ‘회귀 SA07012’(9000만~2억원), 이대원의 ‘농원’(6000만~1억원) 등이 마치 서로를 포용하면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K-아트 거장들의 작업이 얼마나 폭이 넓고, 역량이 탁월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국보급 도자기들도 멋스럽게 자태를 뽐낸다. 전시장 중앙에 배치된 ‘청자상감포류수금연화문매병’(1500만~8000만원)은 고려의 독자적인 문양이자 고려 후기에 즐겨 제작된 ‘포류수금문’이 그려져 있어 고려청자의 전개과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손이천 홍보이사는“더욱이 도상의 배치와 구성이 매우 특이할 뿐 아니라,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성을 잘 담아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고풍스러운 미학을 간직한 도자기 ‘청자퇴화초화문유병’ ‘청자상감운학문합’에서도 몸통 전체가 길죽한 형태의 고려청자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선조들의 삶 속에 담긴 지혜와 문화를 되새길 수 있다.

운보 김기창의 ‘죽림칠현’, 오원 장승업의 ‘화조영모도’ 등에서도 한국 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요약적으로 읽을 수 있다.

출품작 관람은 무료이며, 프리뷰 기간 중 전시장은 무휴이다. 경매 참여를 원하는 경우 케이옥션 회원(무료)으로 가입한 후 서면이나 현장 응찰, 또는 전화나 온라인 라이브 응찰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또 경매가 열리는 20일은 회원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경매 참관이 가능하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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