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제22대 총선이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직 판사와 검사들의 총선 출마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검찰청은 최근 현직 검사 신분으로 출판기념회를 열고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에 대해 법무부에 중징계를 청구했다.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였던 지난해 추석 때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라며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문자 메시지를 고향 주민들에게 보냈다가 논란을 빚은 뒤 경고를 받자 사직서를 내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판ㆍ검사 등 공직자도 선거 90일 전까지만 사직서를 내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은 중징계 사유가 있거나 내부 감찰ㆍ수사ㆍ재판 등을 받고 있는 공무원의 퇴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김 검사의 총선 출마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법원은 현직 경찰 신분으로 제21대 총선에서 당선돼 논란이 됐던 민주당 황운하 의원에 대한 당선무효 소송에서 “공무원이 공직선거 후보자가 되기 위해 공직선거법이 정한 기한 내에 사직원을 제출했다면 사직원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사직원 접수시점에 그 직을 그만 둔 것으로 간주돼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며 황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 전상범 부장판사와 심재현 부장판사도 최근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총선 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 직전에 의원면직 처리됐다.
사실 현직 판ㆍ검사가 사직 후 곧바로 총선 레이스에 뛰어드는 사례는 흔치 않다. 대부분은 사직 이후 최소 1년 이상은 변호사를 하다가 정계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의 총선 출마가 사법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해 법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이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여의도에 가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것 아니냐는 의심은 물론, 결국 그동안 이들이 해온 수사ㆍ기소와 재판이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 아니었냐는 의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검장을 지낸 A변호사는 “이들이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수사나 재판을 받은 당사자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출세나 정치를 목표로 수사나 재판을 해왔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 같은 사례가 이어지면 아무리 법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더라도 그동안 쌓은 신뢰는 한방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조차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선에서 현직 판ㆍ검사들의 출마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2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주자 1위로 급부상하자 민주당은 현직 판ㆍ검사 출마 제한을 위한 법원조직법ㆍ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로 넘어간 이후 단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어차피 여야 모두 차기 총선 과정에서 현직 판ㆍ검사를 영입할 테니 법안을 심사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에게 이득이 있거나 흥미가 있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정신을 파는 경우를 말한다.
부디 마음은 이미 여의도에 가 있는 판ㆍ검사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로서도 차라리 일찌감치 법복과 검복을 훌훌 벗어던지고 마음 편하게 정치 활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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