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임기 첫 주택공급 성적표가 나왔다. 작년 8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란 타이틀의 8ㆍ16대책에서 공언한 ‘270만호+알파’ 목표에 비하면 초라하다. 주택 인허가 실적이 38만8891호에 그쳤다. 2010년(38만6542호)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다. 앞선 4개월의 주택공급을 이전 정부가 담당한 2022년(52만1791호)과 비교해도 25.5% 급감했다. 8ㆍ16대책 때 정부가 설정한 작년 주택공급 목표(47만호)에도 8만1109가구 모자란다. 임기 내 목표를 채우려면 남은 4년간 연평균 57만7777호씩 231만1109호를 지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목표 달성 가능성에 고개를 젓는다. 주택시장 상황이 지금과 가장 유사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3년이 지난 2011년(54만9594호)에 50만가구를 어렵게 복원해서다. 공교롭게도 당시 인허가 실적이 2008년 37만1285호, 2009년 38만1787호, 2010년 38만6542호로 작년과 흡사하다. 그러나 주택공급 여건은 그 때보다 나쁘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대표되는 프로젝트파이낸싱 위기로 민간의 주택건설 여력이 바닥난 건 비슷하지만 당시엔 민간의 공백을 메울 공공기관들이 건재했다. 지금은 ‘카르텔 논란’ 속에 숨죽이고 있는 신세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공사비다. 금융위기 당시에는 3.3㎡당 300만~400만원이면 아파트 한 채를 넉넉히 지었다. 지금은 700만원도 빠듯하다. 서울 강남이나 여의도 등지 재건축공사의 계약액이 700만∼800만대이고, 1000만원 돌파가 시간문제다.
고공행진하는 공사비 직격탄을 맞은 서울의 충격적 주택 공급(인허가) 실적만 해도 충격적이다. 전년(4만2724호)보다 40.2% 폭감한 2만5567호가 전부다. 주택건설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0년 이후 최소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4만8417호)을 넘어 더 큰 위기로 기억된 IMF 외환위기, 1998년(2만8994호)보다 적다. 최근 만난 한 전문가는 “조합원분을 빼면 일반에 나온 물량은 집계치의 4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멸실 가구수를 감안하면 작년 서울 주택 수가 줄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통계치가 나빠서인지, 최근엔 통계 발표 때마다 정부의 대책이나 후속조치가 덧붙는다. 이번에도 노후계획도시특별법 시행령과 1ㆍ10대책 후속조치들이 며칠새 줄줄이 나왔다. 하지만 1기 신도시특별법상 가장 빠른 선도지구 입주 목표가 2030년이다. 시장에선 2035년 입주도 힘들 수 있다고 본다. 당장의 공급난을 완충할 첩경은 3기 신도시 등 신규택지와 재건축ㆍ재개발 속도를 높이는 길뿐이다. 1일 인터뷰를 한 도시정비 전문가는 “3년 후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서울 등 수도권 ‘공급절벽’은 피하기 어렵다. 특혜 시비가 쏟아질 정도의 파격적 대책이 필요한데, 정부와 정치권이 그런 부담을 지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달 ‘구원투수’로 등판한 2기 경제팀의 어깨가 무겁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1년여 전 인터뷰 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름이 왔는데 겨울옷을 고집하면 되겠느냐, 풀 수 있는 건 다 풀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현 주택시장은 겨울옷에 겨울이불까지 뒤집어쓴 형국이다. 2기 경제팀이 공공의 주택공급 역할을 빠르게 복원하고 민간부문에서 창의적ㆍ획기적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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