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문화적으로 주목할 또 하나의 기록이 있었다. KBS ‘굿모닝 팝스’가 방송을 개시한 것이다. 팝송가사를 활용해 영어회화를 공부한다는 기획취지 덕에, 좋아하는 노래를 통해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 중 당대 최고의 영어선생님으로 주저 없이 ‘라디오’를 꼽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휴대전화가 라디오를 대신할 만큼 세월이 급변한 지금은 상황이 뒤바뀌었다. 세계 곳곳에서 BTS와 블랙핑크의 노래로 한글을 배우고 있다. K-Pop과 유튜브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한글선생님이 된 모습을 보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저력을 알린 88년 올림픽의 전율이 다시 느껴져 뿌듯하다.
K-Pop이 세계에 한글을 알리는 촉매제가 되었지만, 한글은 그 우수성을 일찍이 인정받았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훌륭한 글자이며,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했고, 영국 다큐멘터리 작가 존맨은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극찬했다.
수년 전부터 K-Pop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과 같은 영화 등 문화영역 전반에서 ‘K-컬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한글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구찌가 한글을 주제로 한 의류를 출시했고, 최근에는 코카콜라가 한정판 ‘코카-콜라 제로 한류(K-wave)’를 출시했다.
온 세상에 자국의 자랑거리를 공식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산업과 문화영역에서 이룬 성과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엑스포가 그 중 하나일 듯싶다. 각국은 엑스포를 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며, 우리나라도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를 통해 88올림픽에 이어 또 한번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다.
작금의 상황은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이므로 그 플랫폼으로 ‘한글 엑스포’를 만들어 널리 확산시키면 어떨까. 아마도 ‘K-컬처’를 알릴 뿐 아니라, 관광산업과 저출산 해소방안까지 발전시킬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엑스포’로는 바르셀로나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1992년 올림픽 개최에 이어, 2011년부터 매년 ‘스마트시티 엑스포’뿐만 아니라, MWC(Mobile World Congress)도 개최하여 첨단도시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비단 ‘가우디 투어’와 같이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발전상을 체험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고 있다.
그럼 한글이 우수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의 바르셀로나가 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세종시가 최적지일 듯하다. 세종시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종대왕으로부터 따 왔고, 지난해 577돌 한글날 경축식은 이런 도시의 정체성을 감안해 서울이 아닌 세종시에서 역사상 최초로 열렸다.
세종시 곳곳에 자리한 시설들에는 한글이 녹아들어 있다. 금강의 양 강변을 잇는 금강보행교는 한글자음 ‘ㅇ’을 딴 독특한 모양 때문에 ‘이응다리’로 불리며, 신수도를 조성 중인 탄자니아 총리가 세종시 방문시 감탄한 명물이기도 하다. 1446미터의 국내 최장 보행교로 설계된 취지 역시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에 착안한 것이다. 이외에도 순수 한글로 정한 마을이름과 국립박물관단지 등 ‘한글 엑스포’가 열리면 관광객들로 북적일 장소가 곳곳에 있다.
세종시는 최근 ‘세계를 잇는 한글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88서울올림픽이 세계인의 대화합을 이뤄낸 것처럼 ‘한글 엑스포’가 다시 한번 “손에 손 잡고 한글문화로 꿈을 꾸는” 장(場)이자,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로서 방점을 찍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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