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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동학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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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2-27 06:00:40   폰트크기 변경      

봄에는 벚꽃ㆍ겨울에는 설경…고즈넉한 천년고찰
쓸쓸하지만 경건한 걸음…대전현충원
호국영령 내려다보는 겨울산…가을엔 단풍 명소


관음암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17년 전 대전에 2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 태어난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대전에 처음 가서 ‘어디부터 가볼까’ 고르다가 처음으로 가족 나들이를 한 곳이 현충원과 동학사였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찍어놓은 사진들이 다 날아갔으니 더욱 아쉽다. 그때 참 잘 나왔다고 생각했던 현충원 단풍나무 밑 사진 한 점이 가끔 기억에 떠오른다. 필름과 인화, 앨범이 사라진 시절, 마음껏 찍을 수 있는 풍요로움은 가끔 소중함을 잊게 한다.

서울에서 동학사를 가려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유성버스터미널로 가는 게 편하다. 1시간50분여를 달려 유성에 내려 버스나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강북에 사는데다 버스가 좀 불편한 나는 서울역으로 갔다. 일행들과 동학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옛 사진 추억에 들렀다 가려고 좀 더 일찍 출발했다.


호국분수탑. 뒤로 현충문과 현충탑이 보인다.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1시간, 대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현충원역에 도착한다. 현충원역이라고 현충원이 바로 있는 건 아니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매시간 5분과 35분에 공짜 셔틀버스도 있다. 시간이 안 맞으면 일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 역시 배차간격이 길어 상황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

국립대전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이를 해소하고자 1985년 준공했다. 앞선 1982년부터 안장을 시작했고 이후로도 묘역을 추가 조성해 현재 총면적은 330만9553㎡에 이른다. 독립유공자부터 천안함, 제2연평해전 전사자 등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세월호 참사 의사자들과 손기정, 노태우의 묘소도 있다. 4만여 위패봉안까지 합하면 14만5000여 분이 여기에 모셔져있다.

지난 2001년 8월에는 홍범도 장군을 이곳에 모셨다. 시끄럽고 소모적인 이념논쟁도 있었지만, 조용히 참배하러 오는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현충원역 3번 출구에서 현충원 입구까지는 ‘홍범도장군로’로 지정됐다.


홍범도장군로 이정표


△좌청룡ㆍ우백호 대전현충원

대전현충원은 문필봉을 조종산(祖宗山)으로 옥녀봉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있으며, 계룡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삼고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좌우능선이 좌청룡ㆍ우백호를 이룬 명당자리다.


천마용비상


현충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웅장한 천마용비상이 맞이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거룩한 넋을 원동력으로 세필의 천마가 힘찬 기셀 조국을 영원히 약진, 번영으로 이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쓰여있다. 현충원에는 웅장한 조형물이 많다. 호국분수탑과 현충문, 현충탑은 일렬로 배열돼있다.


현충문 현판은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것을 ‘안중근체’로 쓴 현판으로 바꿔 달았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체를 올려다 보며 문을 지나면 거대한 현충탑을 만난다.


안중근체로 쓰여진 현충문 현판.


새로운 출발이나 각오를 다질 때 정치인들이 현충탑에 참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반인도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다. 셀프참배기도 있어 어떻게 하는지 안내해준다. 인원이 많다면 현충원에 미리 연락하면 집례관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참배(參拜)는 본래 무리가 경의(敬意)나 예의(禮意)를 표함을 뜻한다. 3회 분향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잘 조화를 이루어 생활함을 의미한다. 현충원도 호국영령과 하늘, 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3회 분향을 하고 있다. 헌화의 방향은 꽃봉오리가 고인을 향해야 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겸양을, 죽은 사람은 향기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게 현충원의 설명이다.



현충탑


웅장한 조형물들 아래로 고개가 숙여지는데 그 규모 때문이 아니라 빼곡히 잠들어 있는 선열들 때문이리라. 묘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세가 영령들을 지켜주고 있는듯하다. 아니 영령들이 거대한 산세의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전현충원 묘역


겨울 끄트머리 현충원은 조금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고 간혹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과 안장하는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현충원 공기에는 쓸쓸함과 경건함이 섞여 있다.

이곳은 대전의 가을 단풍명소로도 유명하다. 시끌벅적한 단풍놀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보훈둘레길도 만들어져 걷는 이들도 많다. 이 역시 현충원인 만큼 걸음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계곡 물소리와 함께 걷는 길


향아정


현충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동학사 입구 정류장에 닿는다. 이때도 긴 배차 간격은 참고해야 한다.

동학사는 계룡산 동쪽에 자리 잡은 비구니 스님들의 승가대학이다. 갓 출가한 스님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신라시대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그곳에 남매탑(보물 1284호ㆍ1285호)을 건립했다고 한다. 상원조사가 호랑이 목에 걸린 큰 뼈다귀를 빼주었는데 나중에 다시 찾아온 호랑이가 상원조사를 실신한 처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처자가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부부의 연을 청했으나 상원조사가 거절하고 수도에 정진하자 둘은 의남매를 맺고 불도를 닦으며 일생을 보낸다. 이후 상원조사의 제자가 이를 기리어 남매탑을 지었다고 한다.

남매탑 있는 곳에 있던 절 이름은 당시 ‘청량사’였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를 짓고 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의 동학사가 됐다. 동학사에는 고려 충신을 기리는 삼은각(三隱閣)과 단종(端宗)과 충신의 위패를 모신 숙모전(肅慕殿)이 있다.


동학사 오르는 길 옆 계곡물


동학사 입구에서 점심을 먹었다. 계곡 따라 식당들이 많다. 계곡을 바라보며 앉아 먹고 마시는 식당들이다. 동학사 오르는 길옆에는 계곡이 이어지는데 그래서 오르는 길 내내 물소리가 함께한다. 한적한 겨울 길 배경음악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있어 외롭지 않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꽤 굵직하고 이끼가 낀 나무들이 길가에 함께한다. 봄이면 이 고목들에서 꽃망울이 터진다고 한다. 벚꽃이다. 동학사 오르는 길 벚꽃축제는 유명하다. 철이 되면 밤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고종이 사액했다는 숙모전과 동계사, 표충사, 삼은각,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미타암, 귀명암, 상원암 등을 둘러본다. 규모가 큰 절은 아니지만, 겨울 설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고즈넉하다.

초입에서 동학사까지 가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지만, 욕심을 낸다면 갑사와 마곡사까지 둘러볼 수도 있다. 각각 봄과 가을에 아름답다고 해 춘마곡, 추갑사라고도 한다. 갑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하다.


동학계곡 옛길


현충원의 단풍, 동학사의 벚꽃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설경과 고즈넉함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다시 봄이 되면 꽃이 만개하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흐드러질 것이다. 계절이 돌고 풍경이 바뀌면 한나절 걷는 길이 또 다른 모습이겠지. 풍경은 달라져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다. 당신이 절경이다.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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