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풍 기자 |
[대한경제=이계풍 기자] 지난해 11월 처음 찾은 국내 최대 게임행사 ‘지스타(G-Star)’ 현장은 꽤 충격적이었다. 발디딜 틈 없이 전시장을 꽉 채운 대규모 인파, 화려한 스크린과 웅장한 음악으로 꾸며진 부스, 그리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처럼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기업 총수들의 등장은 그간 다녀본 수많은 전시회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치권의 관심도 뜨거웠다.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려했던 지스타 현장과 달리 일선 게임산업계는 곡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을 털어내고자 공격적인 신작 출시까지 예고했지만, 정부 규제란 높은 벽 앞에 좌절하는 모습이다. 이달 22일부터 시행되는 ‘확률형 아이템 표시의무제도’가 대표적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가 구매하는 아이템 중 종류나 성능 등이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는 게임사가 의도적으로 확률을 조작해 특정 아이템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확률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게임업계도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규제 수위가 과도하게 높다고 토로한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범위는 일정기간 동안 오직 유료 뽑기로만 특정 아이템을 제공하는 ‘컴플리트 가챠’를 비롯해 단일 아이템 뽑기인 ‘캡슐형’, 장비 등의 능력치를 특정 확률로 유상 강화하는 ‘강화형’ 등이 대상이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개별 시행 때마다 확률이 바뀌는 ‘변동 확률’ 역시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기준만 제시하고, 최종 결정은 게임사 자율에 맡기는 경쟁국 일본과 대조적이다. 일본 당국은 획득 확률이 1% 이하인 아이템이나 5만엔(약 45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아이템에 대해서만 게임사가 세부 확률을 공개하도록 규정할 뿐 나머지는 자율규제가 원칙이다.
업계는 하루에도 수개씩 추가되는 아이템 하나하나에 대한 상세 정보를 입력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자칫 잘못된 정보라도 제공하면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게임사가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의 지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다.
최근 국내 게임 산업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사업 중단, 인력 감축 등 위험 신호가 시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연이은 악재에 기업 소송전 등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지는 모양새다.
국내 게임시장은 30년도 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미성숙한 시장이다. 빈틈이 많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에도 순서가 있듯 지금은 게임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보다는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줄 때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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