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호수, 27일~31일 ‘벚꽃만개 콘서트’
불광천, 내달 4~6일 ‘윤동주 시낭송회’
사진 : 영등포구 제공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봄이다. 문밖을 나서면 여린 꽃잎이 흐드러지는 계절이 왔다.
봄의 백미는 단연 벚꽃이다. 눈송이처럼 날리는 벚꽃잎 천지에 서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나태주 시인은 벚꽃을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라고 표현한다.
벚꽃의 개화일은 표준목을 기준으로 벚나무 한 그루 중 세 송이 이상이 완전히 피었을 때를 뜻한다. 그런데 올해는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최근까지 이어진 예상치 못한 꽃샘추위와 일조시간 부족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2023년 여의도 윤중로에 만개한 벚꽃나무 사이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 : 영등포구 제공 |
그래도 어김없이 꽃은 핀다. 벚꽃은 한번 피기 시작하면 오전과 오후의 개화 상태가 다를 정도로 빠르게 꽃봉오리가 열린다. 이처럼 벚나무가 날씨를 알아보는 것은 온도계처럼 작동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 낮 기온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오르는 등 완연한 봄 날씨가 이어지자, 예정대로 ‘봄의 전령’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한껏 차올랐다.
2023년 도봉구 우이천 일대에서 열린 ‘도봉 벚꽃축제’ / 사진 : 도봉구 제공 |
벚꽃이 피어있는 시간은 부서질 듯 소중하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인 꽃이 벚꽃이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벚꽃 개화 시기가 늦어질 때면 더욱 그렇다. 길바닥에 하얗게 떨어진 잎들만 구경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서울 곳곳 ‘봄의 전령’을 맞이하는 축제 잇따라 열려
2023년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한 모습 / 사진 : 영등포구 제공 |
지난 23일 국내 최대 규모의 봄꽃 축제인 진해군항제 막이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도 곳곳에서 벚꽃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서울은 윤중로 일대의 ‘여의도 봄꽃 축제’를 비롯해 송파 ‘석촌호수 벚꽃축제’가 열린다. 성동구에서도 ‘송정마을 벚꽃축제’와 ‘금호산 벚꽃축제’가 잇달아 열렸다. ‘2024 도봉 벚꽃축제’와 불광천 벚꽃축제인 ‘은평의 봄’ 등 자치구마다 벚꽃 맞이에 분주한 모양새다.
서울시는 올해 ‘여의도 봄꽃 축제’ 350만명을 포함해 봄 기간동안 약 965만명이 축제를 다녀갈 것으로 전망한다.
여의도 봄꽃 축제, 봄을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
먼저 영등포구는 작년보다 엿새 이른 29일부터 ‘여의도 봄꽃 축제’를 연다.
다음 달 2일까지, 5일 동안 여의서로(서강대교 남단~여의2교 입구, 1.7km) 및 여의서로 하부 한강공원 국회 축구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18회를 맞이한 이번 축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봄꽃 축제다. 올해는 ‘봄꽃 소풍(Picnic under the Cherry Blossom)을 주제로, 행사장 전체를 캠크닉(캠핑+피크닉) 컨셉의 피크닉 존으로 꾸민다.
사진 : 영등포구 제공 |
특히 올해부터는 지역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영등포 아트큐브’도 처음 선보일 계획이다. 현대미술의 블루칩으로 불리는 김우진 작가의 조각품 ‘개(Dog)’를 중심으로 문래동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하니, 꽃과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봄을 사용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벚꽃을 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담는 사람들도 있다. 영등포구는 서울시 최초로 시각 장애인들에게 축제 해설을 제공하는 ‘마음으로 걷는 봄꽃 산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영상 해설사가 동행하여 청각과 촉각으로 함께 봄을 느끼며, 한강 요트 체험을 더 해 색다른 경험을 선물한다.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1일 1회 운영한다.
축제 첫날 500여 명의 주민과 함께하는 ‘꽃길 걷기’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매일 오후 다채로운 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봄꽃 스테이지’와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푸드 피크닉존’이 준비돼 있다.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봄을 만끽하고 싶다면 여의도로 발걸음을 재촉해보자. 무려 1800여 그루의 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룬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석촌호숫가를 둘러싼 분홍 꽃잎의 향연
석촌호수를 둘러싼 벚꽃들. 사진은 2023년 송파구 ‘호수 벚꽃축제’의 모습 / 사진 : 송파구 제공 |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3월 말에서 4월 초인 국내 벚꽃 개화 시기가 시험 기간과 겹치자 나온 슬픈 이야기다.
그래도 흩날리는 분홍 잎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도 들떠 수습할 길이 없다.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많은 석촌호수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를 가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고, 한쪽 손에는 영어 단어장을 든 채 벚꽃 구경하러 잠시 들른 학생들. 그래도 벚꽃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다.
2.6km의 석촌호숫가를 천 그루가 넘는 벚꽃 나무가 둘러싼다. 수변에서 벚꽃길을 따라 걷는 송파구 ‘호수 벚꽃축제’도 서울의 대표 봄 축제다. 올해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열린다.
서울시는 축제기간 동안에만 이곳에 약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했다.
2023년 송파구 ‘호수 벚꽃축제’ / 사진 : 송파구 제공 |
올해 ‘호수 벚꽃축제’에는 ‘벚꽃엔딩’이 없을 예정이다. 늦춰진 개화 시기에 맞춰 폐막식이었던 ‘벚꽃엔딩’ 콘서트가 ‘벚꽃 만개 콘서트’로 명칭이 변경됐다.
‘호수 벚꽃축제’에는 개막식날부터 다양한 축하 공연과 점등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다. 첫날인 27일에는 등(燈) 전시와 야간 경관 조명이 길을 비춘다. 점등시간은 오후 6시30분부터 10시까지다.
봄을 주제로 한 공예품, 굿즈. 예술작품 등을 판매하는 플리마켓도 열린다. 준비된 다양한 경관조명과 포토존은 벚꽃이 떨어질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특히 29일 우이천 수변무대에서는 가수 김희재, 부활의 축하공연과 비보이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예술인 무대가 펼쳐진다.
송파 벚꽃축제가 열리는 석촌호수는 MZ세대 사이에서 소문난 송리단길과 맞닿아 있다. 호숫가에서 만나는 벚꽃의 향연과 맛집 탐방을 동시에 즐기길 원한다면 송파 ‘호수 벚꽃축제’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벚꽃 그늘 아래에서 만난 문학 이야기, ‘은평의 봄’
“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해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윤동주 시인의 시, <봄>의 전문이다. 1936년에 지어진 이 시를 읽노라면 화자가 살고있는 동네의 따뜻한 봄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봄의 한 가운데서 ‘윤동주 시인’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은평구는 불광천 벚꽃축제 ‘은평의 봄’을 다음 달 4일부터 6일까지 개최한다.
불광천 벚꽃축제 ‘은평의 봄’ / 사진 : 은평구 제공 |
특히 6일 오후 3시에는 한국사 강사 최태성과 함께하는 ‘윤동주 이야기 및 시낭송회’가 열릴 예정이다. 은평구에는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평양 숭실중학교의 후신인 숭실중학교가 있는 곳이다. 벚꽃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배우는 문학, 그리고 윤동주를 알고 싶다면 ‘은평의 봄’이 제격이다.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축제라는 위상에 걸맞게 유명한 초청가수 공연도 준비돼 있다.
가수 김범수, 하이키, 진성, 코요태, 뮤지컬 배우 김소현, 이찬성 등 벚꽃을 보며 실력파 가수들의 감미로운 노래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와도 봄처럼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누군가에겐 만개한 벚꽃이 오히려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봄은 한사코 만물들이 죽음에 맞서 새로 태어나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생기롭다. 눈부신 벚꽃을 감상하며 봄의 정취를 느끼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아 보는 건 어떨까.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시처럼 우리도 떨어지는 벚꽃 아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으러 채비를 마치고 떠나보자.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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